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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Feb 17. 2021

3040의 클럽하우스를 떠나 10대의 세계에 잠입해봤다

둘 다 SNS로 분류되지만, 클럽하우스와 제페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들 클럽하우스에 미쳐있다. 물론 나역시 여기저기 이야기도 듣고 스피커로 나서서 깝도 쳐봤지만 드라마도 한 시리즈를 진득하게 다 못보는 성미상 오래 버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중독성은 또 오져서 이 방 저 방 기웃대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무슨 방에 들어와있는지 다 아는 게 넘 부끄러워... 나에게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Girl들을 노리는 BOY들을 위한♂︎ L.O.V.E 짝대기♡" 같은 방에 있다는 것이 세상만사 드러나는 건 마치 중딩시절 다운받아 보던 쇼콜라야설 같은 걸 가족에게 들킨것만같은 수치스러움... 하지만 그런 방들은 너무 재밌는걸...ㅠ 재치꾼들 같으니...


클럽하우스를 끊어보고자 연휴 동안 10대부터 20대초반, 말로만 듣던 그 '젠지세대'가 사랑한다는 다른 종류의 SNS에 도전해보았다. 바로 그것이 제페토(ZEPETO). 내가 제페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바타를 기반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해 그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SNS라는 것 정도였다. 아바타라고는 라떼의 슈퍼스타 아바타스타 슈밖에 모르는 나였기에 목소리 대신 아바타를 앞장세워 대화를 나누는, 어린 친구들의 클럽하우스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고 접속했다.


가입 후 어플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내 셀카를 찍거나 내 사진을 어플에 제공해야 했다. 마치 아이폰6S같은 육체에 자신감이 있던 나는 - 내장된 건 후지지만 디자인은 아직 봐줄만하다는 뜻임 - 연휴라 사흘째 세수도 안 했지만 당당하게 셀카를 찍었다.


오?

ㅋㅋㅋㅋㅋㅋㅋㅋ나의 AVATAR~

제법 나와 닮은 얼굴이 아바타로 만들어졌다. 동글동글. 얼굴이 대강 만들어지자 상세설정 페이지로 넘어갔다. 어플 자체적으로 가입 축하금으로 8500코인인가를 주는데, 이 한도에서 아이템을 사서 내 아바타를 꾸밀 수 있다. 몸매 선택은 자유라서 나의 실제 몸매와 흡사하게 큰 키에 매우 글래머한(?) 몸매를 선택했다. 몸매를 쫙 드러내는 원피스를 입고 나름 젊어 보이고자 머리에 귀여운 도깨비뿔(v_v)도 달았다. 그 와중에 실제 현질을 해야 살 수 있는 구찌니 디올이니 하는 명품 옷도 팔고 있어서 신기했음. 난 다 꾸며도 4천 얼마 코인밖에 들지 않았다. 최소한만 꾸며도 미인인 게 찐 미인의 특징 아입니꺼...? 그리고 드디어 입장!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이건 SNS보다는 게임에 가까웠다. 마치 학창시절 학교 컴퓨터실에 몰래 깔아서 하던 '바람의 나라'가 생각났다. 토끼나 다람쥐를 잡으면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맵들에는 애니팡같은 게임이 있어서 게임을 수행하면 코인을 받을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다. 현질한 아이템을 잔뜩 몸에 두른 아바타는 눈길을 끌었다. 게임 캐릭터가 아바타로 정교하게 변했고, 접속할 수 있는 맵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바람의 나라랑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딱히 요즘 애들이 가상세계에 미쳐있다거나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라떼도 다 했던 거네!


문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외모부터가 나이많은 게 티가 났던 것이다. 아바타인데 어떻게 나이많은 게 티가 나냐면, 제페토의 세계에서는 자기 쌩얼과 비슷하게 생긴 아바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촌시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이 세계에서 인기 많은 외모는 따로 있었다. 정말이지 새~~~ 하얀 피부에 정말이지 비~~~~쩍 꼴은 몸, 그리고 괴기스럽게 처진 눈과 그 눈을 뒤덮은 진한 아이라인, 반전으로 또 엄청 밝은 색의 마스카라, 눈 밑부터 뺨까지 덕지덕지 칠한 시뻘건 블러셔, "듀"라고 소리내고 있는 듯 어색하게 두툼한 입술이 남녀불문 미인으로 여겨졌다. 그런 애들은 어느 방에 가도 모두가 말을 걸어줬고, 그러다보니 모두가 다 저런 얼굴을 하게 된 듯했다.


아, 이것이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갖고 있는 미의 기준인 모양이었다. 여기서 글래머한 몸매에 쌩얼 가까운 아바타를 둔 건 1990년대에 태어난 나밖에 없었다. 라떼의 미인은 이런 것이었는데!


아바타부터 30대 티가 나다 보니 어린 친구들에게 다가가기도 괜히 쑥스러웠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가입한 남동생은 달랐다. 일단 여기는 여자애들이 많아서, 남자 아바타가 들어오면 어쨌든 인기가 있다. 나와 비슷하게 자기 얼굴 그대로 아바타를 구현한 남동생에게는 "오빠, 오빠" "아저씨, 아저씨"하며 여자애들이 잔뜩 말을 걸고 따라왔다. "오빠인지 아저씨인지 어떻게 알아?" 하고 묻자 그 여자애들은 "딱 보면 알지. 누가 그런 옷 입어ㅎㅎ"하고 반문했다.그 여자애들은 구찌나 디올의 가상 아이템을 잔뜩 몸에 두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몇살인 줄 안 건지 뭔지 어쨌든 아바타 세계 미인 외모를 한 여자애들은 남동생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뜬금없이 한 명 여자애는 남동생에게 "오빠 우리 사귀자"라고 말했다. 접속 12분 여 만이었다. 이... 이게뭐지? 메이플 연애 같은 건가? 잠시 후 남동생은 또 다른 여자애에게 초대를 받아 방을 이동했다. 그곳은 결혼식장이었다........... 여자애가 결혼식 옷으로 꾸며 입고 나타났다. "오빠랑 결혼하려고 3천 코인 썼어!" 이 곳에서는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 그 여자애는 남동생에게 집요하게 서울 어디에 사는지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애는 14살이었음.


제페토 안에는 자체적인 SNS가 또 있다. 아주 인스타그램과 흡사하게 생겼는데, 아바타 사진을 찍어서 게시하고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줄 수 있다. 많은 친구들과 자주 사진을 찍을수록 뭐 코인을 더 얻는건지 뭔지 많은 애들이 계속 셀카를 같이 찍자고 하곤 그걸 제페토 자체 SNS에 게시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이 눈 쳐지고 눈밑이 새빨간데 입술을 "듀"하고 가상의 구찌가방을 둘러맨 친구들이 함께 포즈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아, 진짜 내 몸처럼 온갖 포즈도 다 잡을 수 있다. 정말이지 정교하다. 어플 자체의 용량도 무척 크긴 한데, 아바타를 정말 사람의 몸처럼 구현할 수 있긴 하다.

나와 남동생의 아바타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처음 접속했을 땐 소싯적 바람의 나라 하던 시절이 떠올라 재미있었지만 점차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여기엔 절대 현실에서의 모습이 공개되지 않는데, 자기네들끼리 똑같이 생긴 아바타를 두고 서로 "너무 예쁘세요"라고 칭찬해대는 모습이 이제는 수구꼴통 기성세대에 편입해버린 내 입장에서는 너무 괴상하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현질 오천원 만원 해서 아바타한테 구찌 입히면 더 현타 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조차도 꼰대스런 생각일 수 있었다. 나도 중딩때 유행하던 레스포삭 크로스백 사고 싶어서 용돈을 얼마나 모았던가. 게다가 레스포삭은 10만원도 안 했는데 구찌는 100만원도 넘는다. 온라인 세상에서라도 갖고 싶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과 나는 줄곧 다른 방에 있었기에 남동생을 초대하려 했다. [초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의 친구는 초대할 수 없었다. 남동생과 싸이버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던 어딘가의 핸드폰 너머 그녀는 남동생을 초대할 수 있었다. 그 때 뭔가, 어렴풋이 생각은 했던 사실을 직접 몸으로 깨달았다. 3040이 클럽하우스를 하고 10대는 제페토를 하는 이유를.


클럽하우스에 접속하는 주체는 "나"다. 현실의 김현유다. 스피커가 되면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김현유이구여~~ 저는 한국축구랑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구여~~~~어쩌구저쩌구여~~~~. 장황할지언정 거기에 가짜는 없다. 프로필에는 내 사진이 있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몇 줄의 글이 있다. 가짜를 쓰면 안 된다. 철두철미하게 현실의 공간이다.


하지만 제페토에 접속한 아바타는 내가 아니어도 됐다. 다시 생각해보니, 가입 후 아바타를 만들 때 나는 내 셀카가 아니라 태연이나 아이유의 사진을 쓸 수도 있었다. 굳이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아바타를 만들지 않아도 됐다. 이름도 정직하게 "김현유"라고 하지 않아도 됐다. 온갖 이상한 이름을 써도 상관없었다. 제페토에서는 스마트폰 바깥 세상 속 내가 누군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바타들끼리는 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아바타 SNS를 좋아요해주면 된다. 축 처지게 화장한 눈빛을, "듀"하고 튀어나온 입술을, 오천원 만원 현질해서 산 구찌 가방을 칭찬해주면 된다. 지옥같은 입시와 사춘기 그리고 닭장같은 교실에 끼어 받는 스트레스에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10대와, 인생 노잼인 주제에 어디서 있어보이는 얕은 지식 주워갖고 클럽하우스에서 떠들어제낄 수 있는 3040은 그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10대들은 제페토가 좋을 것이고 3040은 제페토를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여기 있는 10대들도 나이가 들면 달라질 것이다. 바람의 나라에서 '뉴꼰듀' 같은 닉네임 달고 토끼 잡다 "님저랑사길래요" 같은 말을 듣던 내가 지금은 클럽하우스의 뉴꼰대가 되어 떠들고 있는 것처럼. 제페토는 그냥 한때의 놀이 같은 것이랄까.


다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현실이 싫은 아이들은 제페토에 과하게 몰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현실은 스트레스 투성이지만 제페토에서는 아바타만 이쁘게 꾸며도 다른 예쁜 친구들과 셀카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좋아요 백만개 받으면서 내가 슈스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오천원 만원만 내면 구찌 가방도 턱턱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상생활만큼 현생도 잘 보낸다면야 아무 상관 없는 문제들이다만, 성인들도 종종 현실을 도피해 가상세계에 빠지는데 10대들은 이런 부분에 더욱 취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악용 여지가 있다는 점. 만약 정말 나쁜 목적을 가진 어른이 멀끔한 아바타를 하고 아이들에게 접근한다면? 싸이버 결혼식 했으니 실제로도 한 번 만나보자고 한다면?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높아 보였다.


결론은 제페토와 클럽하우스는 같이 SNS라는 범주에는 들어 있지만 전혀 다르며, 세대간 SNS 활용법에 차이가 있기에 서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고, 뉴디터는 그 와중에 졸라 꼰대처럼 10대들의 유희거리를 분석하고 있다는 것. 클럽하우스 끊겠답시고 들어가놓고 클럽하우스에서 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 또 잘난척 아는척 주구줄줄 글로 풀어버렸다. 정말... 나란 젊꼰... 나란 기성세대...ㅠ 이렇게 반성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따가 또 기사로 써볼 생각에 군침이 싹돈다.


PS. 마지막은 충격적인 이야기. 제페토에서 만난 몇몇 애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네 클럽하우스 알아?" 애들이 대답했다. "들어는 봤어." 근데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어. 우리 엄마 하는데ㅋㅋ"


그렇다. 그들에게 클럽하우스는 엄마가 하는 어플이다. 10대들과 나의 거리는 그정도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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