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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Feb 22. 2021

내 남편의 모든 것

살다보면 정말 말이 없어져요.

“살다보면 말이 없어져요. 서로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무서운 일이죠.” -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中

남편과 대화가 많이 줄었다. 이직을 하고 난 뒤부터 부쩍 그렇다.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다르고, 마감 때면 새벽이 깊어서야 귀가하기도 하고, 그럼 집에서는 정말 잠만 자게 되니까 마주하는 절대량이 줄어 그런 것 같다. 모처럼 함께하는 주말에는 부족한 잠 채워야 하고, 또 일 생기면 서둘러 처리해야 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으니 공통의 대화 주제도 점점 떨어져간다. 오랜만에 기분 내자고 집밖에 데이트를 나가 맛있는 걸 먹어도 양쪽으로 마스크 안 낀 사람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만 한가득이라 입을 더더욱 다물게 된다. 할 말도 없다. 나는 남편을 너무 잘 아니까 물어볼 것도 없고, 남편은 나를 잘 모르지만 어차피 마누라니까 궁금한 게 없다. 원래는 둘 다 뉴스 보는 게 일이었고 시간도 많았으니 매일 할 얘기가 넘쳤지만 부동산이라는 큰 목표를 손에 넣고 나니 관련 뉴스 얘기하는 것도 이젠 입아프고 속터지기만 해 잘 안 꺼내게 된다. 이제는 출퇴근 시간이 어긋나니 시간도 안 맞는다. 그나마 축구 얘기가 공통의 주제인데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서 그닥 할 말이 또 없다 

조금이라도 대화 주제를 넓혔으면 해서 같이 영화나 드라마라도 봤음 하는데 그런 걸 같이 볼 사람도 아니다. 억지로 앉아 지겨워하면서 영화 보는 옆에서 시끄럽게 유튜브를 켜 놓고 정신사납게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꼴 볼 바에는 그냥 아무 제안도 안 하고 마는 게 낫다. 나도 딱히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해서 보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같이 읽어줄 사람은 더더욱 아니니까 보다 쉽게 보라고 고른 게 영화랑 드라마일 뿐이었다. 그냥 뭐라도 단지 같이 할 얘깃거리가 있었으면 했던 건데.

뉴스 토론을 제외하면 우리 사이 공통점은 이렇게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대화를 위한 어떤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재미없어보이는 유튜브나 시끄럽게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냥 무시하고 싶어진다. 어떤 대화도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생각은 안 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평화롭고 태연하다. 무심하다. 어쩌면 대화가 줄었다는 인지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임은 물론 나처럼 결혼생활의 효용에 대해서 고민할리는 만무하다. 맨날 나만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이럴 것이다. “뭐 맨날 재밌겠어?! 여보도 힘들면 나랑 노는 게 아니라 집에서 쉬는 거지.” 이런 반응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도 꺼내고 싶지가 않다. 남편은 정작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못 한다. 사실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냥 성격 자체가 그렇다. 그런 태연함과 무심함을 알면서도 좋다고 결혼한 사람은 나다.

한때는 정말 이렇게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 다 있을까 싶었다. 남편과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결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로운 이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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