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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Jul 27. 2021

화창한 오후의 결혼정보회사 전화

여자 잡지기자는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상 최악의 직업이란 말이 있다

“일단 이번달 마감은 연휴 전까지 시마이 치는 걸로 알아.” 태어난 이래 mbti 결과가 한 번도 estj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계획충 실행충 밀림이란없는 정글의전사는 디렉터 선배로부터 저 말을 듣고 전의가 불탔다. 내가 뭘 쓰고 뭘 고치는지도 모를 정도로 키보드 위에서 아주 칼춤을 췄다. 계획을,, 망칠 쑤 업써,,,


계획이 어그러지면 estj는 죽음과도 같은 불안을 느낀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잘 하던 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제한시간이 1분, 3분씩 짧게 정해진 게임은 평소의 반도 안 되는 기량으로 처참히 패배하곤 했다. 괜히 긴장하는 것이다.


칼춤을 추는 가운데 갑자기 010 어쩌구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섭외를 넣어둔 연예인이 있기에 그쪽인가 해서 얼른 받았다. “네, 김현유입니다.” 상대는 밝은 목소리의 여자였다. “아 김현유님~~~ 저희 압구정 $&@#*€£인데요~~”


소속사가 압구정 어디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나는 중간에 그 부분을 못 들었다. “죄송하지만, 어디시라구요?” 여자의 목소리는 높았다. “$&@#*€£인데~ 혹시 만나는 분 있으세요?” 그 순단 나도 모르게 어......... 하고 탄식했다.


“결혼했는디....”


당황해서 작아진 내 목소리와 달리 여자의 목소리는 연신 밝았다. “아 고객님 결혼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압구정 $&@#*€£의 누구누구였습니다~~~”


저렇게 끝까지 강조한 걸 보면 다음(?)이라도 꼭 찾아 달라는 걸까. 안타깝게도 나는 끝까지 잘 못 들었지만.


그나저나 여자 잡지기자는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상 해녀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선배들의 말이 생각났다. 출퇴근이 불규칙하고, 쉬는 날을 미리 지정하기 쉽지 않고, 밤낮없이 대기해야 할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으르신들이 말하는, “여자 직업”으로는 최악인 셈이다. 그럼 우리 신랑 직업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 회사원 남자는 해녀보다 낮은 여자 잡지기자보단 높은 등급이 나올 게 분명했다.


좀 짜증이 났다. 쒸익,,, 분하다,,, 계획과 마감은 내가 더 잘 지키는데,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상 점수는 더 낮다니. 결혼생활에는 계획이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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