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것

현생의 나는 찌질이지만, 페북 속 나는 누구보다도 재밌게 사는 듯했다

by 김현유

고작 십년쯤 전이지만, 이십대 초반 시절은 언제나 까무룩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아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러가지 바보같은 흑역사를 생성하진 않… 았을까? 아니, 알았더라도 감정 과잉이던 그 시기엔 참지 못하고 수많은 일탈을 저질렀을 게 분명하다. 그 나이엔 누구나 머리론 알아도 몸이 이성을 못 따라오는 행동들을 종종 벌인다.


그 때는 보여지는 것에 많이 집착했다. 하필이면 페이스북이라는 새로운 실시간 sns가 대두되던 때였다. 실시간으로 내가 하는 말이 친구들의 피드에 떴다. 실시간으로 후면 카메라로 찍은 내 셀카에 하트가 날아와 박혔다(그당시 내가 쓰던 모토로라 스마트폰엔 전면 카메라가 없었다).


현실의 나는 주말 밤 기숙사에서 몰래 막걸리나 마시고 있는 찌질이지만 페이스북 속의 나는 누구보다도 인생 재밌게 사는 발랄한 스무살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현실을 설명하며 골계미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그닥 웃긴 것도 아닌데 내가 쓰면 웃겼다. 고작 하루 일기를 썼을 뿐인데 다들 나에게 수많은 “ㅋㅋㅋ”과 함께 인생 참 스펙타클하게 산다, 너처럼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댓글을 남겨줬다. 잠을 자려면 침대 옆 책상에 발을 넣어야만 하는 구조의 쓰레기 같은 자취방에 다 낡아 구멍이 숭숭 뚫린 이불 덮고 살면서 맥주 살 돈도 모자라 깡소주 마시고 있었던 주제에 그런 댓글을 보면 신이 났다. 난 지금 누구보다 재미있게 잘 살고 있어. 모두가 인정해 주잖아.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재미나게 잘 살 거야. 다들 그렇게 말해. 그런 생각을 하며 취기에 젖어 몸을 꾸기고 잠들곤 했다.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계속됐다. 과대를 했고, 인턴을 했고, 연애를 했고, 복학을 하고, 취업을 하는 그 지난한 세월 동안 나는 내내 보여지는 모습을 강조했다. 특별히 더 재미있게 사는 척, 특별히 더 능력있는 사람인 척, 특별히 더 운이 좋았던 척,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인 척, 척척척척 구구절절 늘어놓은 글들은 다수의 따봉을 받았다. 종종 어디선가 받은 상장이나 수료증 같은 것들응 사진으로 함께 올리면 “언니 넘 멋쪄요” 같은 댓글도 줄줄이 이어졌다. 난 멋지게 살고 있어. 그러므로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됐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자의식이 점점 비대해져 갔다. 내 삶은 뭔가 재미있고 특별하다고, 난 뭘 하든 운이 따르는 사람이고 훗날에도 성공할 것이었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계속 타인에게 내 삶을 전시하며 인정을 받아야 했다. 평범한 친구들과는 달라 보여야 했다. Sns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걸 언제 그만뒀지?


결혼 전까지였던 것 같다. 결혼하고 한 1년 지나고 나서부터는 웬만하면 그런 글이 잘 안 나온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는 것도 민망스럽다. 이제는 남에게 보여줄 만큼 재미있는 일상도 아니고, 유쾌한 사진이 가득한 것도 아니며, 내가 딱히 잘난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한 순간에 이렇게 바뀌었냐면 여러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온갖 글잘쓰는 관종들이 모여 있는 업계에 몸담게 된 것, 비교적 먹은 나이, sns는커녕 카톡 사진도 올리지 않는 남편의 영향 등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특별함, 나의 운빨을 보여주거나 인정받지 않는다고 해서 견디지 못할만큼 불안하진 않다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이십대의 나는 계속 불안했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내가 남들보다 못나 보일까봐, 동기들에 비해 스펙이 부족한 내가 경쟁에서 밀릴까봐, 남들 다 사랑하며 산다는 예쁜 나이에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게 드러날까봐, 똑똑하고 예쁘고 대단한 아이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태될까봐, 그런 수많은 불안감에 나는 보여지는 것에 절박하게 매달렸던 셈이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겪고 지나는 일이긴 할 테지만.


행복한 삶은 무채색이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다. 반짝이는 행운을 과시하지 않아도, 내 삶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이제는 그걸 알고 있다. 그 덕분에 매일이 똑같이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불안감 없이 행복한데 머어땨용? 앞으로 어떤 일을 보여주기식으로 할 계획은 15년-20년쯤 후 강릉 시장(mayor) 후보 출마 및 시장 직무 시행 때말곤 없을 듯하다. 나의 공약은 하나도 남지 않겠지만, 보여주기식 선거유세 퍼레이드와 즉위식(?)만큼은 오래오래 볼거리로 남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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