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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Sep 02. 2021

보여지는 것

현생의 나는 찌질이지만, 페북 속 나는 누구보다도 재밌게 사는 듯했다

고작 십년쯤 전이지만, 이십대 초반 시절은 언제나 까무룩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아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러가지 바보같은 흑역사를 생성하진 않… 았을까? 아니, 알았더라도 감정 과잉이던 그 시기엔 참지 못하고 수많은 일탈을 저질렀을 게 분명하다. 그 나이엔 누구나 머리론 알아도 몸이 이성을 못 따라오는 행동들을 종종 벌인다.


그 때는 보여지는 것에 많이 집착했다. 하필이면 페이스북이라는 새로운 실시간 sns가 대두되던 때였다. 실시간으로 내가 하는 말이 친구들의 피드에 떴다. 실시간으로 후면 카메라로 찍은 내 셀카에 하트가 날아와 박혔다(그당시 내가 쓰던 모토로라 스마트폰엔 전면 카메라가 없었다).


현실의 나는 주말 밤 기숙사에서 몰래 막걸리나 마시고 있는 찌질이지만 페이스북 속의 나는 누구보다도 인생 재밌게 사는 발랄한 스무살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현실을 설명하며 골계미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그닥 웃긴 것도 아닌데 내가 쓰면 웃겼다. 고작 하루 일기를 썼을 뿐인데 다들 나에게 수많은 “ㅋㅋㅋ”과 함께 인생 참 스펙타클하게 산다, 너처럼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댓글을 남겨줬다. 잠을 자려면 침대 옆 책상에 발을 넣어야만 하는 구조의 쓰레기 같은 자취방에 다 낡아 구멍이 숭숭 뚫린 이불 덮고 살면서 맥주 살 돈도 모자라 깡소주 마시고 있었던 주제에 그런 댓글을 보면 신이 났다. 난 지금 누구보다 재미있게 잘 살고 있어. 모두가 인정해 주잖아.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재미나게 잘 살 거야. 다들 그렇게 말해. 그런 생각을 하며 취기에 젖어 몸을 꾸기고 잠들곤 했다.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계속됐다. 과대를 했고, 인턴을 했고, 연애를 했고, 복학을 하고, 취업을 하는 그 지난한 세월 동안 나는 내내 보여지는 모습을 강조했다. 특별히 더 재미있게 사는 척, 특별히 더 능력있는 사람인 척, 특별히 더 운이 좋았던 척,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인 척, 척척척척 구구절절 늘어놓은 글들은 다수의 따봉을 받았다. 종종 어디선가 받은 상장이나 수료증 같은 것들응 사진으로 함께 올리면 “언니 넘 멋쪄요” 같은 댓글도 줄줄이 이어졌다. 난 멋지게 살고 있어. 그러므로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됐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자의식이 점점 비대해져 갔다. 내 삶은 뭔가 재미있고 특별하다고, 난 뭘 하든 운이 따르는 사람이고 훗날에도 성공할 것이었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계속 타인에게 내 삶을 전시하며 인정을 받아야 했다. 평범한 친구들과는 달라 보여야 했다. Sns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걸 언제 그만뒀지?


결혼 전까지였던 것 같다. 결혼하고 한 1년 지나고 나서부터는 웬만하면 그런 글이 잘 안 나온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는 것도 민망스럽다. 이제는 남에게 보여줄 만큼 재미있는 일상도 아니고, 유쾌한 사진이 가득한 것도 아니며, 내가 딱히 잘난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한 순간에 이렇게 바뀌었냐면 여러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온갖 글잘쓰는 관종들이 모여 있는 업계에 몸담게 된 것, 비교적 먹은 나이, sns는커녕 카톡 사진도 올리지 않는 남편의 영향 등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특별함, 나의 운빨을 보여주거나 인정받지 않는다고 해서 견디지 못할만큼 불안하진 않다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이십대의 나는 계속 불안했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내가 남들보다 못나 보일까봐, 동기들에 비해 스펙이 부족한 내가 경쟁에서 밀릴까봐, 남들 다 사랑하며 산다는 예쁜 나이에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게 드러날까봐, 똑똑하고 예쁘고 대단한 아이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태될까봐, 그런 수많은 불안감에 나는 보여지는 것에 절박하게 매달렸던 셈이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겪고 지나는 일이긴 할 테지만.


행복한 삶은 무채색이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다. 반짝이는 행운을 과시하지 않아도, 내 삶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이제는 그걸 알고 있다. 그 덕분에  매일이 똑같이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불안감 없이 행복한데 머어땨용? 앞으로 어떤 일을 보여주기식으로 할 계획은 15년-20년쯤 후 강릉 시장(mayor) 후보 출마 및 시장 직무 시행 때말곤 없을 듯하다. 나의 공약은 하나도 남지 않겠지만, 보여주기식 선거유세 퍼레이드와 즉위식(?)만큼은 오래오래 볼거리로 남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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