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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라 Nov 12. 2023

제가 계산할게요. 가족이 너무 행복해 보이네요.

장애인 가정에 일어난 뜻밖의 일

안녕하세요. 쭈니누나입니다. 앞으로는 매주 일요일 저녁~밤 즈음에 계속 만나 뵐 것 같아요.

월요병에 시달리시는 많은 학생, 직장인 분들께 조금이라도 따스한 밤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사람도 살아가고 있으니 함께 힘내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요.ㅎㅎ

잘 전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열심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의견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오늘의 이야기는 캐주얼한 에세이입니다.

동생과 함께 겪은 여러 일 중 가장 행복하고도 영화 같은 일인데요. 

제목에 조금 스포를 했지만.. 어떤 사연인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어린이날 장어 천사를 찾습니다]


 우리 가족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장어를 먹으러 간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그렇게 한 지 10년이 넘었다. 내가 장어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가 어린이날 즈음이었는데, 아빠가 최근에 거래처 사람들과 장어를 맛있게 먹었다며 온 가족을 데리고 가신 게 시작이었다.


 우리 가족이 찾은 곳은 경기도에 있는 한 장어집이었다. 그 식당은 주차 공간이 널찍했고, 우리 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았으며, 식사 후 놀 수 있는 배드민턴장과 그네,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장애인인 동생이 들어갈 수 있도록 휠체어용 경사로도 있었고, 식당 내부가 넓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맵지 않은 된장국과 잔치국수도 있어서 동생이 먹을 음식도 확보되었다.


 우리가 처음 간 날이 식당의 개업 날이었다. 아버지는 가오픈 때 방문하셨고, 마침 가족을 데리고 나온 날이 개업날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과 그 장어집의 인연은 남달랐던 것 같다. 이날 받은 개업 기념 수건은 우리 집에서 가장 연식이 오래된 수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우리 가족은 한 마리 삼사만 원 하는 장어를 네다섯 마리 먹고, 시그니처 메뉴인 장어 탕수도 시켜 먹었다. 거기다 후식 배는 따로 있다며 잔치국수까지 먹었다.


 동생도 무한리필 된장국과 밥, 장어 탕수와 소금구이를 잘게 잘라먹었다. 처음 먹어보는데도 입맛에 맞는지 엄마가 떠주는 밥을 잘 받아먹었다. 엄마, 아빠는 배불리 먹고 커피까지 마시며 배드민턴 치는 오빠와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은 매년 어린이날마다 이곳에 오자고 약속했다.



 한 5년쯤 되었을까, 우리는 그날도 맛있게 장어를 먹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사장님께서 우리 테이블로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쪽 테이블 사람들이 대신 계산하시고 가셨어요. 아시는 분이세요?” 우리는 믿기지 않아 되물었고, 똑같은 답을 들었다. 아빠 거래처 분들도 자주 찾는 식당이라 혹시 아는 분인가 싶어 아빠가 얼른 뛰어나갔다. 그런데 처음 뵙는 분이었다. “아는 분도 아니신데 왜...” “아, 가족이 너무 단란하고 행복해 보여서요. 꼭 계산해드리고 싶었어요.”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아빠는 우리에게 말을 전했다. 


 내겐 드라마 속 대사처럼 들렸다. 이게 바로 드라마 속의 흔한 클리셰, “저쪽 신사 분께서 보내신 겁니다.” 같은 상황인 건가? 속으로 실실 웃었다. 웃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저쪽 테이블 사람’이 누군지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남자 두 분이셨고, 일반 체격의 40대 직장인으로 보였다. 아쉽게도 얼굴이나 인상착의를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


 우리 가족은 매년 하던 것처럼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다를 게 없을 하루였는데, 천사 두 분 덕에 우리 가족에게 두고두고 남을 추억이 생겼다. 언젠가는 나도 그 두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린다. 지금은 그 장어집도 사라졌고, 코로나 이후로 가족 외식도 거의 끊겼지만, 가끔은 그때의 기억을 반찬 삼아 행복한 식사 시간을 보낸다. 


 내가 그 두 분께 정말로 감사한 건 장어값을 내주셔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행복한 가족처럼 보였다’는 그 말이 아주 오래도록 감사했다. 잠깐 외출 시에도 챙길 게 많고 준비할 것도 많은 우리 가족에게 외식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동생에게 바람을 쐬어주고 햇빛을 받게 해주고 싶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가 행복해 보였다니. 귀찮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은 더 큰 행복을 품고 있었음을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두 분 덕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그 장어집에도 몇 번 갔고, 다른 장어집을 가보기도 했고, 1박 2일 국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멀리 나갈 때마다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얘기할 때마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 맞나 싶어 늘 신기해한다. 사람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언제까지 우려먹는 존재인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도 또 이 이야기를 우려먹고 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기분 좋은 이 날의 이야기를 장어탕 끓이듯 계속 고아 먹으려고 한다. 사람은 한 번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평생을 살기도 하는 신비로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추신> 장어 천사님, 잘 지내시겠죠? 저희 집 동생은 잘 지내고, 어느덧 삼 남매 모두 성인이 되었답니다. 행복한 기억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늘 두 분이 행복하시기를 빌었는데, 제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요. 혹시나 이 글을 보실 수 있다면 꼭 연락해 주세요. 언제 한번 장어 대접할게요!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 이 에세이는 3년 전쯤 써두었던 글인데요. 지금 보니 고칠 부분이 있어서 살짝 윤문하여 올립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즐거운 기억이네요. '우리 가족이 행복해 보였다'는 말이 아직 가슴에 콕 박혀 있어요. 


제대로 된 사진이 없네요ㅠㅠ 식당의 일부 사진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 근래 뉴스들을 보면 와닿지 않는 말이 된 것 같지만, 아직도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먼저 하고, 힘든 일에 제일 먼저 나서고, 아무 대가 없이 남을 돕는 일을, 아직도 누군가는 하더라고요. 그런 일로 도움을 받은 분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베풀어야지."

이 행복의 눈덩이를 같이 굴려보면 어떨까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겠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감상평을 들어볼까요? 어머니는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하실까요?


*어머니의 감상평*

 우리 다섯 가족을 하나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 주는 참 귀한 분이셨지요. 너무나 고마운 분이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딸도 그때의 일을 아주 정확히 잘 기억하네요. 감사한 일이죠. 그분의 베풂에 우리 아이들도 저절로 교육이 되었나 봅니다.

 부모인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들도 딸도 꼭 커서 다른 이들에게 그날의  자기가 받은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 후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 장어를 먹어도 꼭 그분의 얘기를 기쁘게 나눕니다. 저에게도 참교육이 되었던 날이죠. 그분이 항상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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