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자라 Nov 19. 2023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들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도 잘 보내셨나요? 내일이면 또 월요일이네요.

일요일 밤, 자기 전에 가볍게 읽을 오늘의 글은 장애인 동생의 필수템 소개입니다!

제목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들>이지만, 사실 동생 맞춤에 가깝긴 하거든요..ㅎ

장애인과 가까이 있지 않으면 놓칠 법한 부분도 담아볼 테니 한번 읽어봐 주세요! :-)




1. 손수건

구강 근육 관련 장애를 가진 분들은 침을 많이 흘리실 거예요. 그런 경우 손수건은 필수죠. 저희는 주로 동생 침을 닦는 데 많이 쓰고요. 양치 후 입을 닦거나 얼굴, 손 등을 가볍게 닦을 때는 도톰한 손수건에 물을 적셔서 사용해요. 저희 집은 얇은 손수건과 도톰한 손수건을 다 구비해 놓고, 때에 따라 바꿔가며 쓴답니다!



2. 경기약

우리 막둥이는 무호흡증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필수품에 경기약이 포함돼요. 파우치에 주사기, 호스, 식염수, 약, 가위를 넣어서 휠체어에 걸린 가방에 늘 넣어둔답니다. 집에서도 쓰고, 밖에 나갈 때도 꼭 챙겨야 하는 찐! 필수템이에요.



3. 수면양말, 스카프

날이 추워지면서 다시 애용하기 시작한 수면양말과 스카프입니다. 원래 목이 자주 아프고 기침도 자주 해서 스카프는 사계절 내내 목에 감아주는데요. 수면양말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꺼내어 신겨줍니다. 수면양말은 저도 자주 신는데, 오히려 발이 더 차가워지는 느낌 들지 않나요? 추울 때는 전기장판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ㅠㅠ

다 늘어난 수면양말은 입원 시에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손에 주사를 꽂아두면 불편해서 자꾸 빼버리기 때문에 손 위에 수면양말 앞뒤 자른 걸 끼워두기도 해요. 그러면 손을 자유자재로 못 쓰는 동생이 빼기 힘들어지거든요.



4. 휠체어

출처: open peeps

빠질 수 없죠, 휠체어! 동생의 발이 되어주는 친구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가족여행 갈 때, 물리치료 갈 때 외에 거의 쓰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죠ㅋㅋㅋ 밥은 되도록 휠체어에 앉혀 식탁에서 먹으면 좋긴 한데, 동생 척추가 많이 휜 편이라 휠체어에 앉으면 한쪽 엉덩이가 빨개질 정도로 무게가 쏠리더라고요. 워낙 불편해하고 그래서.. 웬만하면 어머니께서 안고 거실에서 먹이십니다. 엄마는 힘들지만, 동생 생각하면 그게 훨씬 나은 것도 같아요.



5. 가위

아까 경기약에 있던 가위는 약을 개봉할 때 쓰는 가위고요. 여기 적어놓은 가위는 주방가위입니다! 동생은 호스를 연결하진 않았지만 이가 잘 맞물리지 않아 씹기가 어려운 상태예요. 지금은 음식들을 아주 잘게 잘라서 삼키는 식으로 밥을 먹어요. 그래서 식사 준비할 때 꼭 필요한 게 가위와 유리그릇이에요. 유리에 잘라야 자국이 안 남으니까요!ㅋㅋㅋ

TMI는 제가 동생 먹을 거 자르기 대회하면 1등이라는 점..ㅎㅎㅎ 저는 집요하게 자르거든요. 내가 삼켜도 꿀떡꿀떡 넘어가겠다- 싶을 정도로 잘라요. 제가 잘라준 걸 유독 잘 먹는 거 보면 그렇게 뿌듯할 때가 없어요! :)



6. 담요

담요는 의외로 사계절 필수템인데요. 휠체어에 앉으면 다리를 덮는 큰 담요와 휠체어 책상 위에 까는 작은 담요가 꼭 필요해요. 책상 위에는 팔꿈치를 대고 있기 때문에 아프지 말라고 + 차갑지 말라고 담요를 깔고요. 다리는 가려주는 게 없기 때문에 바람을 담요로 막아줘요.

동생이 누워 놀 때는 자기도 모르게 옷이 까져서 배가 드러날 때가 많고, 발도 차가워져서 담요를 덮어줘요. 이불은 너무 무거워서 돌 때 방해가 되니까요. 담요는 사계절 내내 쓰고, 겨울에는 조금 더 두꺼운 담요도 꺼내어 준비해 둡니다.



7. 기저귀

이것도 빠질 수 없는 필수템이죠! 화장실에서 용변을 처리하지 못하는 분들은 기저귀를 차야 하니까요. 동생도 그렇고요. 동생의 경우에는 오줌이 이불에 새는 경우가 많아서 생리대(패드)를 덧대어 써요. 아버지 거래처 중 생리대 만드는 회사에서 상품 가치가 없는 불량 패드들을 제공해 주셔서 잘 쓰고 있습니다. 늘 감사해요!



8. 두유, 단백질 음료, 바나나 우유

누구나 선호하는 음료 하나쯤 있잖아요? 저희 동생은 바나나 우유, 고구마 우유를 되게 좋아해요. 미숫가루도 잘 먹고요. 두유는 어릴 때부터 간식 겸 식사 대용으로도 많이 먹었죠. 하루에 밥을 두 끼 꼬박꼬박 챙겨 먹기가 어려워서 보통 밥 한 끼 + 수시로 음료를 먹는 편이에요. 몇 년 전부터는 단백질 공급을 위해 간호사님 추천을 받아 키즈용 단백질 음료도 먹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것도 돈이 꽤.. 들어간답니다 하핳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9. 샤워침대

동생 샤워와 머리 깎기는 부모님 담당인데요. 샤워할 때 샤워용 침대에 눕혀 씻깁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는 욕조가 없어요. 원래 있는 구조인데, 저희가 빼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그게 참 속상했거든요? 욕조에 누워 반신욕 하는 로망이 있었던 터라..ㅋㅋㅋ 근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어서 뭐, 욕조 있는 집이 더 어색해요.

암튼! 이 침대는 잔구멍이 뚫려 있어서 물이 아래로 빠져 나가요. 사용할 때는 펼쳐서 쓰고, 평소에는 사진처럼 접어서 보관해요. 등을 제대로 씻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실 씻기는 자체로 체력 소모가 워낙 커서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수준입니다. 동생이 커질수록 너무 힘들어져요ㅠㅠ 자주 씻지도 못하는데, 구석구석 못 씻겨주는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10. 의료진, 병원

출처: open peeps

당연한 요소지만 마음 맞는 병원, 의사 선생님 만나기가 맘처럼 쉽지 않죠. 거주 지역에 따라 접근성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고요. 희귀 난치병이면 보통 대학병원을 다니니까 진료 변경도, 예약도 쉽지 않아요.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ㅠㅠ

다행히 저희 집은 대학병원과 가깝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 병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던 교수님을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어요. 강연하실 때는 저희 집 예시도 많이 들어 보인다고 해요.ㅎㅎ 어머니도 늘 의료진분들과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시고요. 저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 가족 모두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존중하고 솔직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치료하는 파트너 관계의 의료진과 다니기 편한 병원은 필수적으로 필요하죠!



11. 바우처 이모

출처: freepik

바우처 이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크게 보면 장애인 바우처라고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따와서 저희는 '바우처 이모'라고 부르거든요. 동생을 돌봐주신 이모분은 여태껏 두 분이 계세요. 두 분 다 저희 집에 최대한 맞춰주셔서 이 또한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이 어릴 때 오셨던 이모는 개인사정으로 그만두셨지만, 같이 밥도 먹고 말동무도 하고 등교해서 수업 보조해 주시고 정말 잘 지냈었죠. 어머니께서 일로 만난 사이라고 선 긋는 스타일이 아니셔서, 저와 오빠도 정말 이모처럼 살갑게 대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동생 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그걸 해주시니, 저희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모가 계셔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숨 돌리시기도 하니까요.



12. 상주하는 가족

출처: freepik

요즘 들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 상주하는 가족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물리적인 케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생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이모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눈치채거든요. 가족이 괜히 가족이겠어요. 저라도 제가 아프다면 저희 가족이 봐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요.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가족이 원한다면 가족이 직접 케어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와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 새끼니까/내 동생이니까 하지... 참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도 미안하고 걱정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13. 좋은 날씨

이건 누구나 필요한 걸까요?ㅋㅋㅋ 동생은 비 오는 날 경기파 영향을 더 받기 때문에 밝은 날이 무조건 낫고요. 날이 추워지면 체온 조절이 잘 안 돼서 힘겹답니다. 그래서 적당한 온도가 정말 간절한데.. 봄/가을이 점점 짧아져서 슬픈 현실이네요ㅠㅠ



14. TV

출처: freepik

TV는 어머니를 위한 필수템일 수도..? 동생을 안고 있을 때 너무 졸려서 꾸벅꾸벅 휘청거리는 엄마를 보면 얼마나 안쓰러운지요. 제가 잠들어도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게 바로 TV입니다. 제가 자면 소리를 키울 수 없어서 자막 있는 프로그램만 본다는 어머니. 그것조차도 잘 안 해서 요즘은 해외 축구에 빠지셨답니다. 엄마의 외롭고도 긴긴밤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예요. 또 가끔 동생이 혼자 거실에 있을 땐 일정한 소음을 내주는 마음 안정 장치이기도 하죠.



15. 맞춤 케어

출처: freepik

세상엔 많은 장애인이 있고, 그들의 삶은 다 다르기에 맞춤 케어가 가장 필요할 것 같아요. 가족 구성원, 가족의 동거 유무, 경제력, 증상, 성격 등 고려할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비장애인을 키울 때 예상되는 단계들이 장애인들에게도 모두 해당되지는 않죠. 맞춤 케어를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하는 일이죠;; 하하) 많은 분들이 삶 그대로를 존중받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어요. 물티슈, 모기향, 약 먹일 때 쓰는 배스킨라빈스 스푼, 소주잔, 가습기, 차 시트 등..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소개해드릴게요~



장애인을 키우면서, 치료하면서 매번 새로운 사건을 마주하고 불안함에 지치신 가족분들 계시죠? 오늘도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진부한 얘기지만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저도 원샷한솔 님, 삐루빼로 님, 필승쥬 님 등 인플루언서분들을 통해 다양한 삶을 접하고 매번 놀라거든요. '장애'라는 단어의 몸집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알아야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며 살 수 있잖아요. 미디어에 나오는, 책에서 읽었던, 유튜브에서 보던 장애인의 단편적인 모습보다 여러 장애의 모습이 노출되어야 한다고 봐요. 하나만 아는 게 제일 무섭지 않나요? 모든 이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순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도 동생의 삶을 조금씩 이야기하고 있는 거고요.


오늘은 주절주절 끝이 길어졌네요.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저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많은 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다들!! 월요일 아침부터 뜻밖의 좋은 일이 함께하시길! :)

작가의 이전글 제가 계산할게요. 가족이 너무 행복해 보이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