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한 로봇공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인간의 정의를 의심케 하는 실험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은 피터 스콧-모건. 줄여서 피터.
피터는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 자신이 종내 움직이지 못할 것을 압니다. 어느 순간 목소리를 내는 일도 불가해지겠죠. 그리고 결국은, 죽을 겁니다. 그는 과학자답게 그 모든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기술력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그렇게 기술을 총동원해 사이보그인, 피터 2.0을 만들어내죠.
여러분은 피터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은 사이보그로 향하는 피터의 일기이자 자서전입니다. 저는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겨 책을 집어 들었고, 목차를 보며 책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건 다름 아닌 우리 동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리고 저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루게릭병이 언제, 누구에게 찾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피터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응원하게 되었어요. 제가 만약 루게릭이라면,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럴 능력도 없었을 것 같아요. 피터는 마침 과학자, 아주 유명한 과학자이자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곁엔 프랜시스라는 멋진 동반자도 있었어요. 큰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주변에 능력 있는 지인이 여럿 있었죠. 이렇게 보면 피터가 이룬 많은 것이 '피터였기에' 가능한 시도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피터를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피터는 모든 중증 장애인, 루게릭 환우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편하지 않은 몸으로부터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에게 경계를 짓는 일은 제게 죄처럼 느껴지는 일이에요.
이건 MND 환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질병이나 사고, 또는 노화로 생긴 심한 신체장애를 최첨단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지만 불편한 육체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그리고 더 강하고 더 훌륭한, 지금과는 다른 '나'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있는 모든 10대와 어른들을 위한 싸움이다.
106p
사실 피터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피터는 게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부당한 처사를 경험합니다. 믿었던 부모님께는 '너의 태도를 바꾸라'는 말을 들었죠. 그때부터 피터는 결심합니다. "프랜시스와 피터는 세상과 싸운다. 우리는 함께 정복한다." 이 정신이 그의 인생의 모든 도전을 뒷받침해요. 그걸 잘 보여주는 예시로는.. 둘이 영국에서 첫 동성 '시민 동반자 관계'가 된 것을 들 수 있겠네요. 그것도 많은 기득권자의 축복 속에서요.
이 책의 챕터는 발칙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피터가 발견한 우주에 관한 3가지 법칙이죠.
1) 과학은 마법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2) 인간이 중요한 존재인 것은 규칙을 깨기 때문이다.
3) 사랑은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이긴다.
피터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세 번째 법칙은 위의 두 법칙을 이길 수 있습니다. 피터는 사랑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저도 그 생각에 동감합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동생도 이렇게까지 건강하게 곁에 있진 못했을 거예요.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오직 사랑 때문에 이뤄지기도 하잖아요.
피터는 '암묵적 규칙'을 찾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암묵적 규칙을 발견해 기업의 보이지 않는 구조와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컨설턴트로서 그가 해낸 주요 업적이죠. 그가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암묵적 규칙'을 강조하는 걸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을 캐치해 허를 찌르는 일에 능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능력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가능케 만든 추진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병을 '죽음'과 결부시키지 않고, '로봇'과 결부시킨 것도 '루게릭에 걸리면 누워 있다가 죽는다.'는 잘 보이는 결론을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틈'을 파고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무척 가치 있는 일이었지요.
피터는 자신의 몸을 대신할 무기들을 장착하고자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칩니다. 첫 번째는 트리플 오스토미(삼중 장루술)로, 위장/대장/방광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입니다. 이후에는 후두 적출 수술을 하는데요. 이는 침이 기도를 타고 넘어가 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술이었죠. 대신 목소리를 잃게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지만요. 그는 생명을 더 연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후두 적출 수술 이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훨씬 더 젊은 시절의 자기 목소리를 AI로 구현할 준비를 마쳤거든요. 3D 기술자와 함께 자신의 표정을 나타낼 수 있는 아바타도 구현했고요. 심지어 어린 시절에 자신이 만든 판타지를 그대로 녹여낸 가상현실 프로그램도 만들어내요. 피터의 동반자 프랜시스는 피터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 건강한 피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터는 본인 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되어도 가상현실과 아바타, AI 기술 등을 통해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진행되는 동안 그걸 현실로 만들고자 무척 열심히 일했죠. 몸이 건강할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피터의 모습은 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바로 그런 일을 과학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에게도 물론 두려움이 닥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의연하게 털고 일어서는 사람 같았습니다.
나는 그저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번영을 누리며 잘 살고 싶어!
147p
피터는 'MND=죽음뿐'이라는 공식을 깨고 싶어 했어요. MND 환자에게 사이보그라는 하나의 선택지를 더하고 싶었죠. 선택은 자기의 몫이지만, 희망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요. 저는 이 태도를 배운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었습니다. '어떤 병이 있어도 번영할 권리가 있지 않나?' 피터 덕에 처음 해본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아프니까 안 돼." 이런 이야기가 당연할 필요는 없는 거더라고요.
선택은 진지하게 견주어볼 만한 대안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선택의 허울을 쓴 기정사실에 불과하다.
384p
저도 동생의 미래가 더 다양하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는, 보다 희망찬 선택지를 원합니다. 물론 AI와 가상현실은 해결해야 할 윤리적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만, 동생이 안 된다면 그 이후 사람들에게라도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면 좋겠어요. 실제로는 뛰지 못해도 뛰어다니는 동생을, 실제로 말하지 못해도 본인 목소리 그대로 말하는 동생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기술이 인간과 상생하려면 [비장애인-기술] 쪽으로 기울어진 관심을 [장애인-기술] 쪽으로도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제목으로 돌아가, 동생이 사이보그로라도 살 수 있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정확한 건 실제로 닥쳐봐야 알겠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동생이 곁에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동생은 신체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테지만요. 동생이 너무 힘들지만 않다면, 제 옆에 누워만 있어도 좋겠어요.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점, 나약한 인간 피터가 해낸 일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모든 사람은 우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26p
여러분은 우주를 어떻게 바꾸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