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동생을 소개할 나이가 됐을 때, 동생이 장애아라고 말해야 했다.
초등학교때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때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가족 얘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오빠가 장애인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수학여행 때 엉엉 울면서 자기 오빠 얘기를 했다. 어린 나에게 그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입을 닫았다.물론 나는 내 동생 이야기를 울면서 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때는 왠지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도 비슷했다. 친구들과 놀 때 가족 이야기가 도마에 오르진 않았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중1이 되었을 때 나는 중3이었고, 그때는 친구들이 물었다. 동생이 어느 중학교에 가느냐고. 우리 중학교는 아니라고 대충 둘러댔다.
왜 얘기를 안 했냐고 묻는다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생의 장애가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친구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머리에 강하게 남아 선입견을 가질까 두려웠다. 나를 동정하는 게 싫었다. 나는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향도 한몫했다.
이런 이유로 말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가까운 몇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학창 시절의 끝자락이라서 그랬을까. 이제 얘기해도 영향이 없겠다 싶기도 하고, 그만큼 친한 아이들이라 말해도 내가 걱정하는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았다. 내 입으로 전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내 이야기를 할 때 이상하게 곡해되는 게 무서웠다. 그 걱정이 없을 때쯤 얘기를 시작한 것 같다. 동네 친구들에게도 이때쯤 이야기했다.
얘기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로 했는데, 집에 오면 동생을 마주쳐야만 하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반응은 덤덤했다. 내 기억엔 '조금 놀랐다', '전혀 몰랐다' 정도이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친구들이 많이 놀랐다면 나도 덩달아 놀랐을 것 같다. 어쩌면 내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본다. "친구에게 동생의 장애를 말하는 법", 자기 계발서의 제목 같은 이 문구에 대한 답은 '정해진 방법은 없다'이다. 나는 내 판단으로 '이쯤이면 얘기해도 되겠다' 싶을 때 이야기를 했고, 다행히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 말했든,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못 전했든, 말하고 나서 혼자 후회를 했든 상관없다. 내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낑낑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사실만을 전달하는 일에 자신이 질 책임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입을 떠난 말까지 모두 책임질 순 없다. 그건 누구도 못 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자기의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이니 마음 쓰지 말자. 어떻게 결정하든 마음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할 말의 파급 효과를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까지 생각하는 좋은 일이다. 본인이 힘들고 불편할 것 같다면 말을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정 말해야겠다고 느낄 때 해도 된다.
'동생의 장애를 얘기하지 않아서 나쁜 누나인 것 같다'라고 고민하는 어린 날의 내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