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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라 Feb 04. 2023

친구에게 동생의 장애를 말하는 법

미토콘드리아 근병증 동생과 살아가기

굳이? 누군가에게 동생의 장애를 알릴지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내 동생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동생을 소개할 나이가 됐을 때, 동생이 장애아라고 말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때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가족 얘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오빠가 장애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수학여행 때 엉엉 울면서 자기 오빠 얘기를 했다. 어린 나에게 그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입을 닫았다. 물론 나는 내 동생 이야기를 울면서 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때는 왠지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도 비슷했다. 친구들과 놀 때 가족 이야기가 도마에 오르진 않았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중1이 되었을 때 나는 중3이었고, 그때는 친구들이 물었다. 동생이 어느 중학교에 가느냐고. 우리 중학교는 아니라고 대충 둘러댔다.

 왜 얘기를 안 했냐고 묻는다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생의 장애가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친구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머리에 강하게 남아 선입견을 가질까 두려웠다. 나를 동정하는 게 싫었다. 나는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향도 한몫했다.


 이런 이유로 말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학창 시절의 끝자락이라서 그랬을까. 이제 얘기해도 영향이 없겠다 싶기도 하고, 그만큼 친한 아이들이라 말해도 내가 걱정하는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았다. 내 입으로 전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내 이야기를 할 때 이상하게 곡해되는 게 무서웠다. 그 걱정이 없을 때쯤 얘기를 시작한 것 같다. 동네 친구들에게도 이때쯤 이야기했다.

 얘기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로 했는데, 집에 오면 동생을 마주쳐야만 하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반응은 덤덤했다. 내 기억엔 '조금 놀랐다', '전혀 몰랐다' 정도이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친구들이 많이 놀랐다면 나도 덩달아 놀랐을 것 같다. 쩌면 내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본다. "친구에게 동생의 장애를 말하는 법", 자기 계발서의 제목 같은 이 문구에 대한 답은 '정해진 방법은 없다'이다. 나는 내 판단으로 '이쯤이면 얘기해도 되겠다' 싶을 때 이야기를 했고, 다행히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 말했든,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못 전했든, 말하고 나서 혼자 후회를 했든 상관없다. 내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낑낑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사실만을 전달하는 일에 자신이 질 책임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입을 떠난 말까지 모두 책임질 순 없다. 그건 누구도 못 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자기의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이니 마음 쓰지 말. 어떻게 결정하든 마음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할 말의 파급 효과를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까지 생각하는 좋은 일이다. 본인이 힘들고 불편할 것 같다면 말을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정 말해야겠다고 느낄 때 해도 된다.


'동생의 장애를 얘기하지 않아서 나쁜 누나인 것 같다'라고 고민하는 어린 날의 내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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