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장들은 예술가다

아빠를 사랑하다.

by 안아

한때 사랑이라는 방대한 주제에 푹 빠져있던 나는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는 렌즈를 끼고 관찰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다고, 아파야 진짜 사랑이라고. 심지어는 타인이 사랑이라 말하는 것들을 내심 무시했다. ’그럴수도 있겠네‘ 마인드로 살아온 내가 사랑이라는 바다에만 빠지면 탕아처럼 헤엄쳤다. Love wins all의 정신 그 자체였더랬다. (신기한 것은, 사랑에 상처를 받았을 때 썼던 글들은 오랜시간 까먹었다가 우연히 들춰보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꽤 촘촘하다.)




이런 날들이 몇년 정도 이어지다가, 사랑 외의 것들을 주제로 한 멋진 작품과 철학들을 접하며 자연스레 사랑의 바다에서 더 넓은 땅으로 걸어나올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기엔 사랑이 최고의 주제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유로운 수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초급자용 풀에서 치는 발장구 수준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는 걸 깨닫자 놀랍도록 더 넓은 세상이 보였다. 무작정 전시회와 북토크들을 찾아다니며 더 넓은 예술을 좇았다.




웃기는 일이다. 내가 지나간 모든 남자들을 비롯하여 친구, 향수, 배움, 예술, 심지어는 사랑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지우고 덧붙이기를 반복했는데….. 정작 처음 해본 사랑에 대한 글은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불효의 면죄부가 될 수 있으리라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가장이라는 역할, 존재, 어쩌면 평생의 숙제. 평생을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퍼담으리라 선택한 후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손해보기 싫어하는 나에게 자식을 향한 사랑이란 영원히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자식의 삶을 꾸며주기 위해 내 삶의 고난과 시련을 기꺼이 허락한다는 것… 무한한 감사를 표현해도 모자를 판에, 적어도 <돈> 때문에 도전을 주저해본 적은 없으니 <나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부쩍 엄마와 아빠가 내 미래의 기준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늘었다. 우리 가족의 대화는 내가 서울에서 따로 살게된 후부터 조금 더 애틋하게 짙어졌다. 나 같은 딸 낳을까봐 걱정돼. 난 엄마처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를 갖는게 무서워.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야. 혹은 굳이 엄마와 아빠에게 직접 건네는 말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우리 아빠도 해주는데, 너는 못 해줘?’라는 고집쟁이 외동딸 심보로 애인에게 이별을 고한 상황이랄지… 무뚝뚝함을 핑계로 여러겹 포장해서 숨겼던 속내들이 사랑하던 사람들과 멀어진 몸의 거리만큼이나 커져서 자꾸만 새어나온다.


우리 아빠는 좋은 학력을 가진 것도, 좋은 집안과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젊었을 적 아무리 내향적이었어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여 응징하다가 툭하면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그러던 와중에 대학도 채 마치지 못했다. 첫눈에 반해 엄마와 8년의 연애를 이어갔지만, 돈과 명예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두던 엄마의 부모님에게 가로막혀 홀대를 받기 일쑤였다.


사랑 앞에서 돈에 가로막힌 그의 자존감은 수없이 꺾이다 못해 부서졌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기준에서 큰 돈과 명예를 가진 남성과 이어진 선 자리에 붙들려나간 엄마, 그리고 가장 싼 커피를 시키고 그들의 뒷자리에 앉아 몰래 눈물을 훔쳤던 아빠.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입김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라며 힘차게 자리를 뜬 엄마, 그리고 그 손을 잡고 나왔지만 비싼 한 끼도 함께하기 어려운 현실에 마주한 아빠. 부모에게 축하받지 못한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기뻐도 기뻐할 수 없게 만든 스스로의 초라함과 계속 부딪히다가 결국 할머니의 입에서 ‘이서방 만한 사람이 없다’며 용서해달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나는 그가 몇번의 은밀한 추락을 견뎌냈을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무엇 하나 손쉽게 이룬 것 없는 그들의 사이에서 마치 그들이 강한 사람임을 인증하는 증표처럼 내가 더해졌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겪은 사랑의 아픔을 묻어주기 위해서라도 어질고 지혜로운 여성이 되리라 굳게 다짐한다. 내가 없던 그 날들을 온몸에 새기고 현명하게 살아가겠다고 모든 별들에게 약속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이런 마음을 묘사하기 위해 태어난 단어다. 독일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술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모든 가장들은 예술가다. 우리가 가끔 누군가의 품 안에 있다는 걸 까먹던 때조차 그들은 우릴 위해 일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사랑에서는 애틋하면서도 영원히 미안한 향기가 난다.




2024. 최고 불효녀가 최고 아빠에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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