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출장

by 윤희영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거실에 커다랗고 딱딱한 가방을 활짝 열어놓았어요. 그 딱딱한 가방엔 바퀴가 4개나 달려있었어요. 아빠는 여기에 옷과, 비닐과 이것저것 물건을 넣고 있었어요. 나는 궁금해서 가방 냄새도 킁킁 맡고, 그 안에 가지런히 놓여진 아빠 속옷, 양말, 티의 냄새도 맡았어요.


그날따라 아침에 나에게 인사하는 아빠의 모습, 표정, 눈빛이 뭔가 좀 다르다고 느꼈어요.

'왜 저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지?'

아빠는 나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쓰다듬고, 나의 냄새를 맡았어요.

“몰리! 엄마말 잘 듣고. 오빠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있어!! 아빠 올 때 맛있는 거 많이 사가지고 올게?”

그땐 그 말의 의미를 몰랐어요. 아빠는 다녀오겠다며 문을 열었고,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딱딱하고 커다란,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나섰다는 것.


나는 아빠의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얼른 베란다로 뛰어갔어요. 아빠가 집을 나가면 잠시 후 아빠는 우리 집 뒤쪽으로 걸어가요. 그리고, 시커멓고 커다란. 내가 우리 아빠집에 처음 올 때 함께 타고 온 차를 타고 회사를 가거든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아빠 차는 저 밑에 보이는데,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날.. 나는 베란다에서 아빠가 나타나기를 계속 기다렸지만, 아빠를 볼 수 없었어요. 엄마는

“몰리야! 이제 그만 들어와. 아빠 해외 출장 가셨어. 오늘은 다른 차 타고 가신 거야”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아빠를 그만 기다리라는 거 같았어요.


아빠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나간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오빠들은 학교에 다녀오고, 엄마는 간식을 주셨고, 나는 얼른 아빠가 퇴근해서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뛰어놀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날은 점점 저무는데, 아빠는 오시질 않고. 엄마가 갑자기 내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었어요.

'이상하네? 아빠가 오셔야 밥 먹고 놀이터 가서 응가 쉬야하고 뛰어노는 건데?'


엄마는

“몰리야 얼른 밥 먹고 산책 가자!”

하셨어요. 물론, 나는 배가 고팠고, 엄마가 주신 밥을 맛있게 먹었어요. 신기하게도 밥을 먹는 동안엔 아빠 생각을 잠시 잊었어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엄마 눈을 봤을 때 다시 아빠 생각이 났어요. 하지만 산책을 가자는 엄마를 따라나섰고, 산책을 하며 쉬야도 하고, 응가도 했어요. 엄마랑 천천히 공원 산책을 하는 것도 정말 즐거워요. 다만, 저 앞에 다른 친구들이 아빠와 산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났어요.

'아빠가 왜 아직도 안 오시지?'


그날 밤이었어요. 아주 늦은 밤. 고요한 집에 갑자기 아빠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의 핸드폰 너머로 우리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몰리~ 몰리야, 밥 먹었어? 엄마랑 놀이터 다녀왔어? 아빠 안 보고 싶어?”

아빠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혼자서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핸드폰을 나에게 들이댔고, 핸드폰에는 그리운 아빠의 얼굴이 보이고 아빠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어요. 얼굴엔 땀이 흠뻑 젖은 상태로요. 나는 아빠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들으며 있는 힘껏 꼬리를 흔들었어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한건 당연하구요.


그 후로도 아빠는 하루에 한 번씩 엄마와 영상 통화를 했고, 가장 먼저

“몰리는?”

하면서 나를 찾았어요.

나는 그때마다 아빠 목소리를 듣고 아빠가 볼 수 있도록 크게 꼬리를 흔들었어요. 잠시나마 아빠의 얼굴을 조그만 핸드폰 화면으로 볼 수 있었고,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지만 아빠의 손길, 아빠의 냄새를 느낄 순 없었어요. 아빠가

“몰리! 뽀뽀!”

라고 외쳤을 때 엄마 핸드폰에 내 코를 갖다 댔지만 아빠 코의 느낌이 아니었고, 아빠의 향기가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내가 풀이 죽어서 그랬는지, 엄마는 평소보다도 더 간식을 많이 주셨어요. 오늘 아침엔 계란도 삶아서 주셨어요.


평소처럼, 오빠들은 모두 학교에 갔고, 나는 산책도 다녀왔겠다 소파에 올라가 벌러덩 누웠어요. 빨랑 낮잠이라도 자면 꿈에 아빠를 볼 수도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어요. 아니, 잠이 든 거 같았어요. 어디선가 낯선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삐삐삑, 철커덕”

“몰리~~ 몰리몰리~~”

나는 눈을 번쩍 떴어요. 꿈인가 싶었지만, 분명 아빠의 목소리였거든요. 나는 소파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앞발을 잘못짚어서 넘어질 뻔했어요.

발이 살짝 삐끗했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관으로 달려갔어요. 현관에는 내가 꿈에서도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신발을 벗어던지더니 들어오면서 나를 두 손과 두 팔로 껴안았어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지만, 아빠의 냄새가 확실했어요. 평소와 다른 이상한 냄새들이 아빠의 몸 곳곳에서 났지만 그 사이에서도 우리 아빠만의 냄새가 확실히 났어요. 나는 꼬리가 끊어져라 힘차게 흔들어댔고, 아빠의 두 볼, 코, 입, 눈, 귀, 머리카락까지 냄새를 킁킁킁 맡았어요.


“몰리!! 아빠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빠도 몰리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우리 몰리 사랑해 사랑해!!!”


그 순간이었어요. 나에게 너무나 힘들었던, 그리웠던 일주일의 시간이 머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어요. 갑자기 서러움에, 화가 확 치밀었어요. 아빠의 두 손을 뿌리치고 뒤로 도망쳐서, 아빠를 바라보며 보란 듯이 크게 짖어댔어요.


'아빠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왜 이제야 온 거예요!! '

“멍멍멍멍!!!!”


아빠는

“몰리야 미안해, 그렇게 화 많이 났었어? 아이고 미안해..”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어요. 나는 화가 많이 났지만, 아빠의 “미안해” 한마디에 마음이 확 풀어져 버렸어요. 나는 다시 아빠 품에 안겨서 아빠의 얼굴을 핥았어요. 며칠 동안 못 맡았던 아빠의 모든 냄새를 다 맡아버릴 작정이었어요.


아빠가 갑자기,

“우리 몰리 주려고 아빠가 선물 가져왔지~~~”

하시면서 딱딱하고 네모난 가방을 열었어요. 거기엔 아빠의 땀냄새가 밴 아빠의 옷들, 양말도 보였지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었어요. 그중엔 처음 보는 장난감, 처음 보는 간식뿐만 아니라, 엄마, 오빠들을 위한 아빠의 선물이 가득했어요.


그렇게, 일주일간의 그리움은 아빠의 선물들로 인해 모두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선물은, 아빠가 그날 나와 함께 놀이터에서 2시간 넘게 공놀이를 해줬다는 것!


몰리선물.png 몰리 선물이 가득한 아빠의 출장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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