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출근, 베란다

by 윤희영

아빠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예요.

아빠는 늘

“몰리~ 아빠 회사 다녀올게, 엄마말씀 잘 듣고, 오빠들이랑 싸우지 말고~”

나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고 출근하셨어요. 나는 시무룩해져서 터벅터벅 베란다로 걸어갔어요. 그날은 엄마께서 환기를 시킨다고 베란다 문을 반쯤 열어두셨어요. 나는 베란다에서 한숨 자야겠다 하고 누우려는데, 바깥에서 시원하고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그 향긋한 바람에서 우리 아빠의 냄새. 조금 전 나에게 인사하고 출근하신 우리 아빠의 익숙한 냄새가 난 거예요. 확실해요. 나는 우리 아빠 냄새를 100m 떨어진 곳에서도 맡을 수 있거든요.


나는 반쯤 열려있는 베란다 문으로 얼른 뛰어가서 밖을 내다봤어요. 우리 집은 3층이에요. 베란다에서는 나무도 보이고, 내 발아래로 주차장도 보여요.

‘어??’

내가 아빠집에 처음 올 때 타고 왔던 그 커다랗고 시커먼 자동차가 저 밑에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그 옆엔 우리 아빠가 서있었어요. 분명 우리 아빠가 맞았어요. 아빠는 문을 열더니 차에 올라탔어요. 잠시 후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매캐한 냄새가 났고 아빠의 자동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갔어요.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아빠의 차가 지나간 방향을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아빠차는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아빠가 나에게 인사하고 출근하시면 얼른 베란다로 뛰어갔어요.


날씨가 좋은 날은 엄마께서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셨지만, 비가 오거나 공기가 좋지 않은 날은 문을 닫아두셨어요. 그런 날을 제외하고는 나는 항상 베란다에 달려가서 아빠가 차에 올라타는 모습, 아빠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봤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항상 내가 볼 수 있는 위치에 차를 댔어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세대차량이 정문 게이트를 통과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신기하게도 이 소리가 들리고 나면 잠시 후 아빠나 엄마가 오셨어요.

그 후로,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현관 앞에 가서 아빠 엄마를 기다리고 반겨주었어요. 물론, 나를 오래 혼자 둔 날엔 시끄럽게 짖어대고 화를 내긴 했지만요.



하루는 어떤 생각이 머리에 확 떠올랐어요.

‘아빠가 출근할 때 차를 타고 가셨으니까, 퇴근할 때도 차를 타고 오시겠구나?’

나는 “세대차량이 정문 게이트를 통과하였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리자 얼른 베란다로 뛰어갔어요. 역시 나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어요. 익숙한 검은색 차가 들어오더니 거기에서 우리 아빠가 내린 거예요. 아빠가 걸어오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아빠가 보이지 않게 되면 나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갔어요. 그러면 잠시 후 어김없이 아빠가 “삐삐삑, 철커덕”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이후 저는 항상 베란다에서 아빠의 출근하는 모습, 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저도 이를 다 갈고, 어느 정도 컸으니까요.


그날도 역시 아빠 차가 들어온다는 신호가 왔어요. 나는 하루 종일 누워있느라 뭉친 근육을 풀 겸 (아빠가 흔히 말하는)“쭉쭉~”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천천히 베란다로 걸어갔어요.

예전엔 아빠가 온다는 신호가 오면 바로 뛰어갔지만, 이젠 그 신호 후에 아빠 차가 들어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급하게 뛰어가진 않게 되었어요.


역시 아빠 차가 보이고, 아빠는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후 뒷문을 열고, 가방을 꺼내서 어깨에 걸쳐 매고 문을 닫고, 손으로 뭔가를 누르면 아빠의 검은 차의 얼굴 양쪽에 주황색 불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어요.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아빠가 고개를 잠깐 들었어요. 고개를 들고는 잠시 이쪽을 올려보시더니, 걸음을 갑자기 멈추셨어요.

“어?? 몰리? 몰리야~~~”

아빠가 드디어 나를 본 거에요. 베란다에 서서 아빠를 내려다보는 나와 아빠의 눈이 마주쳤어요.

“몰리~~ 너 맨날 이렇게 아빠 오는 거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나는 짖지도 않고, 베란다에 매달리지도 않고, 그냥 아빠의 얼굴만 바라보았어요.

“몰리야, 아빠 얼른 올라갈게!!!”

아빠는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오셨어요. 그 짧은 거리에서도 아빠의 숨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아빠는 뛰어오신 게 분명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땀냄새도 살짝 났어요. 아빠는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몰리 너 매일 베란다에서 아빠를 그렇게 기다린 거야?”
“아이구, 우리 이쁜 몰리. 아빠는 여태껏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그날 저녁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몰리가 나 출근하면 베란다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나 봐. 주차장 쪽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데?”

아빠에게 사실을 말하기는 싫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사실 아빠가 도착하면 그때 잠깐 베란다에서 기다리는 거라는 걸.



다음날부터 변화가 생겼어요.

아빠는 현관에서 나와 인사 후 출근을 하셨는데, 주차장에 가면서 내가 서있는 베란다를 계속해서 쳐다보셨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몰리!! 아빠 회사 다녀올게~~ 이따가 봐”

라고 인사하신 후 차에 탔어요.


퇴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빠는 차에서 내리면서 베란다에 서있는 나를 항상 제일 먼저 찾았고,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해 주셨어요. 가끔은 내가 베란다에 서서 아빠를 바라보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느라 집에 조금 늦게 들어오시기도 했어요.


엄마도 이런 나의 일상을 알고나서부턴, 아빠의 출근 직후엔 베란다를 활짝 열어주셨어요. 원래 우리 집은 날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베란다 문을 꽉 닫아놓지만, 아빠의 출근시간에는 나를 위해 잠시 열어주신 거예요.


베란다몰리.png 베란다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몰리


베란다의 몰리


베란다의 몰리2


베란다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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