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린 서로 말을 안 해요

by 윤희영

또다시 시작된 나의 하루.

아빠가 잠에서 깨는 소리와 함께, 저도 쭉쭉~~ 기지개를 켠 후 아빠의 잠자리 옆으로 가요. 아빠는 나를 보고 두 팔을 벌려요. 나는 두 팔 사이로 가서 얼굴을 아빠 가슴에 묻고 “킁킁킁킁” 아빠의 냄새를 맡아요.


가끔 아빠의 손, 팔, 종아리를 핥기도 해요. 짭조름한 아빠 맛이 참 좋아요. 아빠는 내가 그만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세요.


아빠는 일어나서 물고기들 밥을 주시고, 그다음 내 물그릇을 시원하고 깨끗한 물로 가득 채워주세요. 하지만 밥은 먼저 주시지 않아요. 아빠는 얼른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문을 살짝 열어놓으면 나도 그 틈으로 쏙 들어가요. 변기 옆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아빠를 기다려요. 간혹 욕실이 물에 젖어있거나 하면 들어가지 않고 대신 욕실 문 앞에 엎드려서 기다리기도 해요.


아빠가 샤워를 한 후 다리나 발에 물이 여전히 묻어있으면 나는 얼른 일어나서 아빠 종아리의 물을 핥아줘요. 나는 내 몸에, 내 털에 물이 묻어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아빠의 몸에 물이 묻어있으면 아빠도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핥아서 물을 닦아줘요. 아빠는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욕실을 나가세요.

저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빠를 따라나서고, 이제서야 제 밥그릇 앞에 가서 서요. 아빠는 두 가지 사료를 잘 섞어서 내 밥그릇에 부어주세요. 내가 요즘 살이 많이 쪄서, 일반 사료와 다이어트 사료 두 가지를 섞어서 먹는 중이에요. 뭐,, 밥은 적게 먹어도 간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살이 잘 빠지지는 않는 거 같아요.


내가 밥을 먹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빠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나의 응가 비닐을 주머니에 넣어요. 응가 비닐을 챙긴다는 건 나와 외출을 한다는 거예요. 밥을 다 먹고, 밤새 참았던 물을 한참을 마셔요.


그러고는 얼른 신발을 신고 있는 아빠 뒤에 가서 서요. 신발을 신으신 아빠는 목줄을 꺼내서 양손으로 펼치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세요.

나는 아빠 얼굴 한 번, 목줄 한 번 쳐다보고 천천히 걸어가서 목줄 위에 얼굴을 들이밀어요. 아빠는 목줄을 채워주시고, 현관 문을 열어요.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지, 계단으로 내려갈지는 그때그때 달라요. 엘리베이터가 어딘가에 멈춰져있을 땐 아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후 기다리시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으면,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계단으로 향해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그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고, 특히나 그 안에 작은오빠 또래의 친구들이 타고 있으면 내가 겁먹고 짖을게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한 아빠의 방식이었어요.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밖으로 나가면 나의 발걸음은 바빠져요. 방금 먹은 밥에, 잔뜩 마신 물에,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신호가 마구마구 오고 있었거든요. 나의 급한 발걸음에 맞춰 아빠도 가볍게 뛰어서 따라오세요.

우린 아파트 쪽문을 나가서 바로 옆 나무숲으로 들어가요. 아주아주 급할 땐 숲에 들어오자마자 1초도 안되어 쉬야를 해요. 오늘도 1미터를 넘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가며 밤새 참은 쉬야를 다 했어요.


그다음엔 응가가 바로 마려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아빠는 잠시 기다렸다가 내가 응가를 안 하면 산책길로 나를 이끌어요.


두 방향으로 나뉘는 길이 나타나면, 아빠가 가려는 방향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맞으면 자연스럽게 그 길로 걸어가요. 가끔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나는 네 발로 그 자리에서 버티고, 아빠는 얼른 방향을 바꿔서 내가 움직이는 쪽으로 함께 걸어요.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친구들 냄새도 맡고, 산책 나온 친구들과 인사도 해요. 몇몇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나면, 이상하게도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와요. 나의 발걸음이 살짝 빨라지고, 나는 땅바닥에 거의 코를 닿을 듯 말 듯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요. 아빠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자마자 주머니에서 응가 비닐을 꺼내서 펼치고 계세요. 그 사이 나는 응가를 시작해요. 한 덩어리.. 뚝. 세 발 앞으로 걸어가요. 또 뚝.. 다시 세 발 앞으로 걸어가요. 이번엔 잘 안 나와요. 두발 앞으로 더 걸어가며 허리를 더 둥글게 말고 힘을 줘요. 뚝.. 아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의 뒤를 따르며 응가 비닐로 감싼 손으로 내 응가를 하나씩 하나씩 주워요.

내 허리가 완전히 펴지고,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지고, 머리를 곧게 들면 아빠는 그제서야 응가 비닐을 꽉 묶어요.


가끔은 가까운 반려동물 응가 수거함에 바로 버리기도 하시지만, 가끔은 내 응가가 든 비닐을 든 채로 산책을 다녀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공원의 숲길 곳곳엔 종종 어떤 강아지 또는 큰 개의 것으로 생각되는 응가들이 굴러다니고 방치되는 경우가 있어요. 언젠가 아빠는 같은 반려견 키우는 사람이라도 저런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고 엄마랑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응가의 주인공이 혹시 우리 몰리의 친한 친구일지도 모르지...”

하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진 않으셨어요.

아빠는, 산책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그 응가를 보고 혹시라도 “우리 몰리”가 그런 거라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하려고.

‘우리 몰리 응가는 이렇게 비닐에 잘 치운답니다’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응가 비닐을 손에 들고 다닌다고 했어요.




내가 고집 피우는 방향으로 잘 따라오시던 아빠가.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고, 멈추시는 곳이 있어요. 이젠 나도 알아요. 여기서 더 가면 안 되는 거구나. 오늘은... 나는 얼른 포기하고 아빠를 따라 걸어요. 그럼 잠시 후 우린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요. 아빠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시고 나는 그 앞에 얌전히 앉아있어요. 아빠는 물티슈를 가져와서 바닥에 앉아요. 내 발이 더러울 땐 물티슈 2~3장을. 내 발이 깨끗할 땐 물티슈 1장을 꺼내서 들어요. 나는 아빠 앞으로 한발 걸어가서 앉고 손을 내밀어요. 아빠는 나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놔줘요. 이번에 반대쪽 손을 내밀어요.

역시 부드럽게 닦은 후 놓아주세요. 이번엔 아빠가 물티슈를 접거나 뒤집어서 잡아요. 그럼 나는 엉덩이를 들어요. 아빤 뒷발을 한쪽씩 들어서 발바닥을 닦아요. 그제서야 나는 거실로 들어가고, 아빠는 내 발을 닦은 물티슈를 접은 후, 내가 방금 발을 닦던 바닥에 조금 떨어져 있는 흙, 모래를 그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서 휴지통에 버려요.



그 후 아빠는 서랍장 앞에 서고, 나는 서랍장 밑에 앉아서 위를 올려다봐요. 아빤 간식을 하나 꺼내어 내 입에 물려주시고, 나는 조심스럽게 받아물고 소파로 뛰어올라가요. 나는 소파에서 간식을 맛있게 먹는 걸로 아침 산책을 마무리해요. 아빠는 손을 깨끗이 닦고, 나의 물그릇의 물을 비우고 다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채워주세요.




이젠 아빠와의 대화가 많이 사라졌어요. 나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냄새만 맡아도 아빠의 기분을 알고, 아빠는 나의 작은 행동 하나만 봐도 나의 다음 행동을 알고, 이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오늘 아침도, 우린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랑의 소통을 했어요.


뽀뽀2.png 몰리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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