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그날

by 윤희영

다행히도 아직 나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고, 산책도 운동도 놀이도 잘 하고 있어요.


하지만 며칠 전 그날은 떠올리기조차 두렵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심장이 두근두근해요. 너무나 무서웠어요.

나의 “마지막”일 뻔했던. 아빠를 더 이상 볼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던 그때.



여름은 매번 더웠지만, 이번 여름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말도 못 하게 더운 날의 연속이었어요.

아빠는 출근 전 아침 일찍 나와 함께 산책을 하셨고, 가끔 놀이터 앞을 지나가곤 했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없고 놀이터 안은 이미 뜨거운 햇살로 바닥이 달궈지고 있던 터라 우린 금방 나와야 했어요.

“몰리야, 이런 날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간 큰일 나. 지금은 집에 가고 저녁때 시원해지면 다시 와보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빠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와 뺨엔 벌써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어요. 나 역시 발바닥으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고, 길게 늘어뜨린 혓바닥에선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아빠와 놀이터에서 맘껏 뛰고, 아빠가 차주신 공을 점프해서 받아내고 하면서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게 몸으로 느껴졌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거예요.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뛰어놀았던 게 벌써 일주일은 지난 거 같아요.

나는 심통이 났어요. 아빠한테 짜증을 냈어요.

“낑낑 낑낑”

아빠 앞에 가서 얼굴 들이밀고 눈을 맞추며 마음 전달도 해보았고, 아빠 보란 듯이 바닥에 철퍼덕 엎드리며 큰 소리로

“히유~”

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어요.

“몰리야,, 그렇게 나가고 싶어? 이 더운 날씨에? 지금 밖에 나가면 큰일 나..”

말은 이렇게 하셨지만, 아빠의 마음은 이미 약해져있었죠. 나의 시위가 드디어 통한 거 같았어요.


아빤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 한 통을 꺼내들고, 내 응가 봉투를 챙기시더니 반려견놀이터용 “몰리 가방”을 챙기신 거예요.

‘오예~’

내 꼬리는 벌써부터 살랑살랑 하늘을 찌르고 있었어요.

마음은 벌써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었죠.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숨이 턱 막혀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해가 질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바깥 기온은 높았고, 열기는 그대로였어요.


집 앞에서 옆 동 “진주언니”어머니를 만났어요.

“몰리 놀이터 가나 봐요? 많이 더운데,,”
“그쵸, 넘 더워서 안 가려 했는데, 며칠 안 갔더니 몰리가 집에서 너무 심통 부려서 한번 가보려구요.”


그렇게 인사를 짧게 하고, 우린 놀이터로 향했어요.

놀이터까지 오는 동안 뜨거운 땅바닥과 습한 공기로 인해 나의 체력은 이미 반이 소진된 상태였어요.


“몰리야,, 괜찮겠어?”

아빤 몰리 가방에서 공을 꺼내서 바닥에 툭 던져놓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아빠! 끄떡없어요. 얼른 공이나 차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바짝 엎드리며 자세를 잡았어요.

“뻥~”

하고 아빠가 공을 높이 차주셨고, 나는 그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공놀이람?’

나는 너무나 신나게 공을 향해 뛰었고, 아빠께선 또 공을 차주셨고, 나는 그 공을 공중에서 받으려 점프도 하고, 신나게 놀았어요. 아주 잠깐 동안은요...


아빠가 공을 세 번 정도 차주신 후에 내 몸에 뭔가 살짝 이상함을 느꼈어요.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느낌이었고, 나는 뛰던 발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걸었어요.

“몰리야, 벌써 힘들어? 덥지? 얼른 와서 물 마셔.”


아빤 냉장고에서 꺼내오신 생수를 따라주셨어요. 차가운 물이 혀에, 입에 닿자 몸속까지 시원한 느낌이 잠깐 들었어요. 목을 축이고 정신을 차려보니 놀이터 땅바닥의 열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들어오는 습기가 느껴졌어요. 나의 왼쪽 앞다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어요.


“몰리야, 더 이상 공놀이하면 안 되겠는데? 조금 쉬었다가 집에 가자.”
‘아빠, 겨우 공 3번 찼는데 벌써 가자구요? 난 싫은데??’


평소 같으면 아빠가 리드줄을 들고 오시면 멀리 도망가면서 반항하고, “멍멍멍”짖으며 가기 싫음을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오늘은 그럴만한 힘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아빠의 손에 목을 내줬어요.

“몰리 너 많이 힘들긴 한가 보구나. 놀이터에서 목줄을 이렇게 쉽게 매다니. 처음인걸?”


그렇게 아빠와 난 놀이터를 나와서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어요.

아빠는 나보다 한 발짝 앞서서 천천히 걸어주셨는데, 나의 발걸음은 그보다도 더 느렸어요. 리드줄이 팽팽한 걸 느끼셨는지 아빠가 뒤돌아봤고,

“몰리야, 왜 그래? 힘들어?”

아빠께선 깜짝 놀라서 나를 만져보시더니 얼른 두 팔로 안으셨어요.

“저기 그늘 의자에 가서 좀 쉬었다 가자. 너 더위 먹었나 봐. 괜찮아? 괜찮아?? 아이고... "

아빠는 놀란 목소리, 표정으로 무거운 나를 안고 저 앞에 보이는 그늘 의자까지 뛰셨어요.


의자에 나를 내려주시곤, 목줄을 얼른 풀어주셨어요. 목줄을 만져보시더니

“아이고 이런, 목줄도 이렇게 뜨거워졌네, 이것 때문에 더 힘들었겠구나. 얼른 시원한 물 좀 마셔봐”


긴장이 좀 풀려서인가 나의 몸에선 모든 기운이 빠졌어요. 아빠가 눕혀준 상태에서 그냥 몸이 풀어져 버렸어요. 아빠가 흐릿하게 보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몰리야, 몰리야!! 정신 차려봐. 아빠 봐봐. 많이 힘들어?”

아빤 너무 놀란 목소리로 내게 물으며, 생수통에 조금 남아있던 물을 내 입에 흘려주셨지만 물을 마실 기운도 없었어요.

아빠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그대로 나를 들어 올리고는 뛰기 시작했어요. 목줄도 매지 않은 상태로요.

“몰리야, 좀만 참아, 조금만 더. 다왔어 다.”

그렇게 나를 안고 뛰어온 곳은 “맨발걷기”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발을 씻는 수돗가. 그곳엔 “반려견 목욕 금지”라고 적혀있었지만 아빤 나를 그곳에 내려놓으시고는 얼른 물을 틀었어요. 호스를 내 목과 몸과 입 쪽으로 향해서 나의 몸에 물을 흘려주셨어요.


그때까지의 기억은 사실 가물가물해요. 이미 나는 정신을 거의 잃어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찬물이 내 몸에 닿고, 내 입에 물줄기가 들어오고, 내 가슴이, 배가 시원해지면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이제서야 아빠의 손길, 놀란 표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겨우 몸을 가누고 일어서서 아빠와 눈을 마주치자,

“몰리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아빠의 떨리는 듯한 그런 목소리, 놀란 표정, 시뻘건 얼굴,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 땀 때문인지, 물 때문인지 다 젖은 아빠의 옷까지... 그제야 눈에 들어왔어요.


“휴… 다행이다 몰리야.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얼른 집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선풍기 켜놓고 좀 쉬자.”


나는 걸을 수 있었는데도, 아빠는 다시 나를 두 팔로 힘겹게 안고 집까지 걸어오셨어요. 아빠의 놀란 심장이 뛰는 소리, 뜨거운 가슴, 거친 숨소리가 모두 느껴졌어요. 하마터면 다시는 느낄 수 없었던...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런 게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아빠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 지금이 마지막인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사실보다도, 아빠를 두 번 다시 못 볼 거란 생각에 더럭 겁이 났어요.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날 소파에 앉아서 한숨 돌리며 쉬고 있는 아빠를,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마지막”이 아니었기에, 다시 이렇게 아빠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고, 기뻤고, 미안했고, 고마웠어요. 우리 아빠에게...


더운날씨에놀러가자고하는몰리.png 무더운 날씨에 놀이터 가자는 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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