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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Dec 17. 2020

닭과 개의 인연

상가 단골 약국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약사가 물었다. 

“재모네는 엄마, 아빠가 어떻게 그렇게 닮았어요?”

약국 진열대에서 비타민 장난감을 구경하는 재모에게 집중하느라 약사의 질문을 놓친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네? 재모가 저를 많이 닮았다구요?”

“아니, 재모 엄마랑 재모 아빠가 많이 닮았다고요.”

“아아~ 네, 저희 부부요..좀 많이 닮았죠?”


그제서야 나는 약사의 질문을 이해했고, 우리의 생김새가 꽤 많이 닮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녀는 자기 지인들 중에도 우리 부부랑 비슷하게 부부가 남매처럼 닮은 사람이 한 커플 있다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인연이란 게 정말 있나 보다면서 우리 연애사를 궁금해했다. 나는 ‘중학교 짝꿍이었어요’라고 살포시 한 마디 건넸는데, 그게 도화선이 되어 그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너무 재밌어하던 그녀는 내게 이것저것 물었고, 나는 크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짝꿍이라는 대답 한 마디로 내가 재모와 함께 약국을 빠져 나오는 동안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나 봐’라고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고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 중에서



남편과 나는 초, 중등학교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이다. 

우리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같은 반 짝꿍, 첫사랑’이라는 타이틀로 서로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도 보통 사람도, 현명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남편과 내 인생에 날아들어왔다. 



언젠가 28개월에 접어든 재모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아빠가 안경 벗으면 엄마, 엄마가 안경 쓰면 아빠!”

나는 재모가 던진 말이 너무 웃겨서,

“재모야, 뭐라고? 아빠 안경이 뭐?”

그러자 재모는 두 번째 손가락을 옆에 앉은 아빠 안경에 갖다 대면서,

“아빠가 안경 벗으면 엄마! 엄마가 안경 쓰면 아빠!”하고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남편과 나는 박장대소를 했고 아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아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갓 서른을 넘었을 때 내가 남편과 재회하고 연애를 시작한 지 1주일 무렵, 우리는 강남역 길가 대로변에서 타로점과 사주팔자를 보는 작은 천막에 들어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영화표를 예매하면서 상영 시간까지 40분의 여유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안에 앉은 역술가분이 이런 말을 했다.


 “둘이 연애한지 오래됐어요? 둘이 사귀고 100일 동안 헤어지지 않고 잘 지내면 평생 인연으로 갑니다~”라고.

 


결혼 후 다시 강남역 역술가를 찾았지만 그 천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남편과 후일담으로 그때 점쟁이가 내게 “어서 도망가!”라는 말을 평생 인연으로 포장해 말한 게 아닐까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이렇게 세 아들을 낳아 육아를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가끔은 나와 남편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가장한 신들의 장기판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들 만큼 소름 끼칠 때가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앨범에도 버젓이 같은 반에 사진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그걸 결혼 준비하면서 서로의 앨범을 꺼내보며 알아챈 걸 보면 말이다. 어렴풋이 비슷한 그림을 본 듯한데 결국 그 소소한 단서의 조각들이 인연이라는 큰 그림을 위한 퍼즐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듯 내 안에 스미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자연스러운 일련의 만남과 재회. 


어느덧 남편과 함께한 육아도 6년이 넘어간다. 

우리의 연애사는 이제 아이들이 잠든 밤,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반복하는 추억의 레퍼토리가 됐다. 취기가 살짝 든 센치한 남편이 옛일을 회상하며 또다시 이야기를 읖조리면, 난 치킨 닭 날개를 건네며 장난스레 찬물을 끼얹는다.


“그냥, 내가 닭띠고 네가 개띠라서 닭 쫓은 개의 인연이야”라고 말이다.


닭띠 아내와 개띠 남편의 운명적인 만남에 관하여...


*이 글은 2020.12.09 출간한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 에서 발췌했습니다. 

 책에 실린 글과 뒤 스토리가 다른 '작가 무삭제판' 버젼입니다. 편집된 글이 아쉬워 남겨봅니다. 

 원본 전체 글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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