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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Dec 26. 2020

내 안의 용기에 노크하다

[나만보시리즈]_프롤로그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자꾸 추억여행을 한다.

최근 며칠 간의 외출 사진을 보거나 여행지에서 찍어뒀던 사진을 곱씹으며 언젠간 다시 또 어딘가 훌쩍 떠나보리라 다짐도 하면서..

그러다가 초창기에 출판사 문을 두드리며 보냈던 기획서의 프롤로그가 눈에 띄었다.


이번에 출간된 책<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가 기획되기 시작했던 2년전, 한창 다섯 살 첫째와 세살 쌍둥이 육아를 감당하며 이런 저런 고민을 글로 적었다. 그땐 밤낮없이 읽고 쓰고 생각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상상하는 일만큼 오롯이 자유로울 수 있는 행위가 어디 있을까. 그 고민이 '글'이라는 도구로 담겨 '책'이 되었다. 당시 쓴 글 혹은 책에 실리지 못한 일부 글에 대한 아쉬움으로 '나만보시리즈'(나만보기아까운 글을 시리즈처럼 연재하는 것) 오늘부터 조금씩 풀어볼까 한다. 이렇게 나도 익숙했던 내 첫 책과의 이별을 서서히 해볼려고 한다. 그 중 이번 글은 프롤로그를 게재해 본다. 






“한 명은 확실히 아들이고, 나머지 한 녀석은 70프로 아들인 것 같네요. 흠, 첫째 아이도 아들이었나요?” 

“아, 네.. 맞아요..”

“허허, 엄마가 좀 힘드시겠네요. 다음 주에 좀 더 정확해질 테니 그때 한번 봅시다.”

“아, 네네..아.. 다음주요..”


나는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목소리로 답했다. 다음 주가 된다고 달라질게 뭐 있을까? 나는 경산부(이미 첫 출산을 한 여자)였고, 이 날은 쌍둥이의 임신 16주차였다. 아이들 성별이 점차 뚜렷해지는 시기로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우연히 성별을 알려줬던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부러 초음파 진료를 다시 봤다. 마흔 전에 출산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나는 첫째 아이의 돌이 지난 후 서둘러 둘째를 계획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임신은 계획한 대로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전문 병원을 찾아갔고 둘째로 쌍둥이를 임신하게 된 거다. 


남편과는 결혼 전에 세 아이를 계획했었다. 남편은 남매로, 나는 자매로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화기애애한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서로의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맞이한 첫 육아의 민낯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힘겨웠다. 일단 둘째를 키워보고 셋째는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이럴 수가, 둘째가 둘이라니.


나는 첫 출산의 우울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깊어진 우울증에 시달렸다. 두 살 터울인 세 아이를, 그것도 아들만 셋을 돌봐야 한다니. 그간 첫째와 보내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앞으로 벌어질 쌍둥이와의 일상이 떠오르니 머릿속이 지진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첫째를 돌보며 아이에게 하루를 다 내어 줘도 턱없이 부족한 매일을 보내면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최소화된 독박 육아로 내 안에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내면의 이상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아무래도 안되겠어, 나 상담이 필요해!”


남편은 내 요청에 성실히 응해줬고, 곧 전문의 상담을 받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의사가 던지는 극한 질문 속에서 작은 돌파구를 찾게 됐다. 그리하여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9년 세월의 경력 단절과 육아로 인한 자존감 하락을 회복하기 위해 ‘읽고 쓰는 방법’을 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이 생기면 일기장에 글을 쓰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곤 했다. 말은 하는 대로 흘러가버리지만, 글은 수 차례 쓰고 읽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고민의 흔적을 쫓아 글귀를 헤아리는 맛이 있다. 이런 흔적들을 따라가며 머릿속 한 켠을 내어 생각하는 것이 내 안에 힐링이 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나 자신을 찾아가면서 엄마가 되어 살기로 결심한 지난 5년 동안의 생존기다. 

첫째 아이를 통해 처음 부모가 된 남편과 내가 함께 감격하며 울고 웃던 지난 이야기에서부터 쌍둥이까지 아들 셋을 둔 대범한 부모가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아들인 척 아내에게 기대어 살고 싶은 남편을 다독여 ‘함께 육아’를 시작한 이야기와, 외벌이 아빠가 세세히 살피지 못하는 가족 이야기를 매일 부부 대화를 통해 나누는 이야기, 한 번에 두 명의 동생이 생긴 네 살배기 형의 유년시절을 사수하기 위해 엄마, 아빠가 분투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 아들의 성향이 각기 달라서 내 육아에 부등호는 있지만 등호는 없었다. 

대신 태양빛이 작렬하는 육아 사막을 걸으며 부딪쳤던 갖가지 숨 막히는 일상을 스케치하듯 현실적으로 썼다. 그리고 그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법을 ‘사는 일’을 연구하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읽고 쓰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나 밤과 새벽 사이, 야경증으로 세 차례씩 울어대는 아이에게 달려가며 쪽잠을 자야 했던 내가 ‘수면’이 아닌 ‘고민하고 쓰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자니 힘겨웠지만, 쓰면서 내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매일 쓰기 위해 애쓰는 것은 생존하기 위해 연구했던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고 눈에 띌 만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갖가지 현상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내 안에 깃들기 시작했다. 또한, 저 밑바닥에 당도했을 때 괴로움에 잠식당하지 않고 다시 솟구쳐 올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의 육아는 시한이 있는 것, 그러므로 다가올 아이들의 육아는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우리 가족의 지도가 그려졌다. 


이 책이 당장의 육아 현실이 지옥처럼 견디기 어려운 엄마와 아빠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황혼 육아 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돌아올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하는 의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임신을 계획 중인 부부에게는 육아로 인해 변화되는 삶을 예상해보고,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편, 예비 부부에게는 미래 우리 가족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도, 이제 막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 내 뒤를 쫓아 오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Image from Universe Today.com


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 정현종 시인



한 인간의 일생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큼 짜릿하고 멋진 일이 살면서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은 아이들과의 실랑이에 가려져 이것이 행복인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기쁨이 과연 이런 것일까 수천 번 곱씹어 보게 된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그런 실랑이를 주고 받으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자체가 축복이자 감사해야 하는 날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육아로 급박한 그 순간을 즐기는 넉넉한 여유, 나는 이것을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 아이의 첫 걸음마에 가족 모두가 환호했던 것처럼, 쌍둥이가 출근하는 아빠에게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한 것처럼, 행복은 순간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도 순간의 행복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2020.12.9)>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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