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영 Dec 27. 2020

부모라는 그릇의 크기를 재지 말 것

[나만보 시리즈] 우리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 투성이다

우리집 1호의 다섯 살 여름 방학 무렵이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내게 말했다.

 “엄마, 공부 책 좀 준비해줘요.”라고.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별 말을 안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내 앞으로 와서 또박또박 외쳤다.

 “엄마! 공.부.책.좀.준.비.해.달라고요~~!!!!”


그가 말하는 공부책은 서점에서 파는 오천 원 대의 연령별 스프링 책을 말한다. 

분야는 한글도 있고 숫자 셈도 있으며 출판사 별로 다양하다. 한창 집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를 보며 앉아서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해서 사 두고 내주던 것이 우리집에 공부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게 됐다. 


그런데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재모만을 위한 시간을 세 아이가 있는 시간에는 내기 힘들어 듣고도 흘렸다. 솔직히 말하면, 저녁식사 후에 쌍둥이를 재운 후에라야 공부책이든 같이 할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더욱이 세 아이가 모두 잠든 뒤 찾아오는 육아 퇴근 후 온전한 내 시간을 아이에게 한 시간이나 뺏기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딱히 말은 하지 않고 허공만 쳐다보며 입만 삐죽거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틀 뒤 주말 아침, 일찍 눈을 뜬 재모가 곤하게 자는 나를 다급하게 깨웠다.

 “엄마, 공부책 준비해 놨어? 나 그거 지금 할거란 말이야. 어딨어? 어?”라고. 


아아..정말..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이 난리인 것인지.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냥 놀아. 다섯 살이 무슨 공부야. 지금 놀아. 나중엔 놀고 싶어도 못 놀아. 그때 가서 엄마 원망하지 말고 그냥 놀아.. 놀..아..”라고 잠결에 중얼거렸다. 이를 들은 재모는 어김없이 짜증을 부렸고,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집에 몇 권 꽂아둔 작년 책 중 빈칸이 최대한 많은 곳을 찾아 펴서 대충 건네 줬다. 


이것을 시작으로 생각지도 못한 다섯 살 아들 인생의 첫 공부가 시작됐다. 

아직은 아이의 뇌가 이 문제를 풀기에는 이해력이 무르익지 않은 듯 한데 무작정 공부를 외치는 아이를 그냥 외면하기에는 의지가 꽤 완강했다. 책을 읽거나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려고 유도해 봤지만 그 보다 좀더 심오한 공부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홈 스쿨링은 의도치 않게 약 8개월 정도 이어졌다. 

한참 덧셈 문제를 풀다가 문제에 2와 3과 5가 순서대로 나열된, 수식을 넣어 식을 완성시키는 빈칸 문제가 나왔다. 이제 막 덧셈을 배운 아이가 수식의 의미를 알아채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나는 아이에게 이 문제는 더하기와 등호를 이용해 수식을 넣어 옳은 답이 되도록 만드는 문제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해줬다. 아직도 더하기와 등호의 개념을 아이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아이는 빈칸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나열된 수를 이리저리 조합해 보기 시작했다. 

 “3하고 5를 더하는 건가?”라고 했고 나는,

 “그럼 어떻게 되는데?”라면서 계속 물었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나올 기미가 안보여서,

 “앞의 수들을 차례로 더해보면 어떨까?”라고 힌트를 주었다. 내가 힌트를 주자 아이는 곧장,

 “왜 2와 3을 더해야 해?”라고 말했고 나는 문득, 

 “그냥..뭐.. 2와 3을 더하면 5가 되니까?(하하) 그러게.. 왜 2와 3을 더해야만 할까..”라고 답했다. 


2와 3을 더해 5가 나오는, 덧셈을 마스터한 사람의 눈에는 고민 없이 해결하는 당연한 수식 과정이다. 문득, 나는 아이의 물음에 2와 3을 ‘당연히’ 더해야 한다는 방법만 익혔지 ‘왜 두 수를 더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나 당연하듯 정해진 답을 익혔지 ‘왜 그런 것인가’라는 질문은 스스럼없이 잊고 살았다. 숫자 5 안에는 2와 3이 들어있기 때문에 두 수가 모아지면 5가 되는 것이고, 추가로 5가 모아지는 방법은 2와 3뿐만 아니라, 1과 4, 0과 5도 들어있다. 숫자 5가 되는 덧셈의 방식은 문제집에 기출된 것을 파생으로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1+1=2가 아닌 인생살이에서 우리는 당연한 덧셈처럼 ‘부모는 이래야 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자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통해 부모라는 존재와 역할을 답습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는 다른 부모의 정의와 기준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닮고 싶은 모습도 있을 테고, 어떤 때는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도 하면서.


우리는 살면서 시험이나 테스트를 통해 몇 점짜리 결과를 얻었는지 여러 번 확인한다. 테스트는 많은 지식 중 일부만을 담아 우리가 아는 수치로 객관화한 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을 일정 그릇에 담아 딱 그만큼만 재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릇에 담긴 물 말고도 떠올린 그 물이 어디서부터 흘러 온 것인지, 그 곳은 강일 수도, 바다일 수도, 또 호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떠올린 그릇의 양을 체크하는 것보다는 그 바다가 보다 넓고 깊어지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과 많이 닮아 있지 않았나 싶었다. 


출산을 준비하는 모든 부모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매일 다짐하고 결심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란 이래야 해, 이랬었지’라는 그릇에 기준을 담지 말자. 또, 부모의 역할에 있어 폭과 방향을 정하지 말자. 그리고 나무 보다는 눈을 들어 멀리 숲과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자. 아이를 키우는 물리적인 환경보다는 내가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치관과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자. 



* * * * * 


세상에 무엇이든지 ‘당연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 투성이기에 그것이 크던 작던 무게와 규모에 상관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 '나만보시리즈(책에 실리지 않았지만 나만 보기 아까운 글을 모아 연재)'외에 다른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2020.12.9)>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작가의 이전글 내 안의 용기에 노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