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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Dec 29. 2020

오늘을 즐길 충분한 자격

한시적인 자유를 누리는데 눈치보지 말 것

아이가 두 돌 무렵이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이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약 4주간의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거치면 본격적으로 엄마들에게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처음 만끽하는 자유가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간혹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하니까. 아이들이 등원한 후 하원까지 꽤 긴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처리해야 할 빠듯한 일정이 존재한다. 아침에 먹은 설거지에서부터 밀린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하고 좀 쉬려고 하면 점심시간이 돌아온다. 식사 후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한 두 시간 휴식 후 하원을 위한 아이들 간식과 저녁식사 메뉴를 미리 준비해 둔다. 생각보다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마음먹고 잡은 약속 외에는 여유롭지가 않다. 


매일 아침 등원을 할 때면 재모가 나에게 말한다 – ‘엄마는 집에 있어서 좋겠다고.’

아이는 집에 있는 엄마가 종일 쉬고 노는 것이라 생각한 듯 하다. 그래서 잠에서 깨면 하루 일과를 묻는 아이의 습성대로 나도 내 일과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보통은 하원 하면서 엄마가 없는 동안 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묻기 시작했던 것이 내가 할 일을 서로 나누게 됐다. 아들은 엄마의 일정을, 엄마는 아들의 일정을 서로 공유하면서 가끔 마술극이나 강당 활동이 있는 날에는 아이의 일정을 부러운 듯 되짚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가 이따금 부러워하는 각자 일정은 ‘하원시간’을 데드라인으로 나는 주중 매일을 애데렐라로 살아간다. 


남편은 하원시간이 가까워질 수록 힘겨워 하는 나를 볼 때면, 등원시키고 오전과 오후 긴 시간을 혼자 보냈는데도 부족하냐는 볼멘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영화 <부당거래>의 류승범으로 빙의 해 말한다. 

영화 <부당거래> 류승범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오~!”라고. 


그러면 나는 답한다.


 “육아에서 엄마의 희생이 계속되면은, 그게 엄마의 의무인줄 알아요오~!”라고.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드라마 <가을동화>의 원빈과 송혜교에 빙의 해 한 마디 덧붙인다.


드라마 <가을동화> 송혜교와 원빈

“얼마나 줄 수 있어? 육아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아냐고! 니가 육아를 알아? 웃기지마! 24시간 항시 대기 모드로 사는 엄마들의 삶을 너가 아냐고!! 염색체 절반을 제공했으면 책임의식을 가져!” 


역사적으로 인간은 언제나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해 왔다는 말처럼 아이들이 없는 사이 생기는 한시적인 자유시간은 매일이 숴도 숴도 모자랐다. 역시 만족이란 없는 것인가? 나는 소위 나홀로 육아, 독박 육아를 하면서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다양한 내 감정에 종종 질문을 던진다. 그 중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을 되짚어 보니 ‘지금 내가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였다. 질문을 떠올렸던 당시에는 다양한 답이 있었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때를 쓴 날은 하루 종일 안아주고 업어 주느라 팔목과 어깨가 아파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밤에 아이들 새벽 수유를 하느라 몇 달 동안 통잠을 자지 못한 날은 눈에 실핏줄이 올라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주변 근육이 뻐근했다. 또,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날에는 홀로 외출할 수도 없고 얘기를 나눌 상대가 없어 외로웠다. 


어쩌면, 하나가 결혼해 둘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셋이, 또 쌍둥이가 세상에 나와 다섯 명이 되면서 줄곧 홀로일 수 없는 시간들이 모여 채워도 여전한 갈증처럼 ‘쉼에 대한 욕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는지. 갈증은 해소되기까지 지속적인 목마름으로 물을 갈구한다. 매번 시간을 앞두고 마음을 졸이며 누리던 시간에는 하원 후 아이들과 보내는 일정이 내 모든 일과의 저변에 자리하면서 몸은 떨어져있어도 머릿속 한 쪽은 항상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종종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거나 냉장고에 종이를 붙여 놓고 쓴다. 이따금 아이들이 좀더 자라면 하고 싶은 몇 년 후의 일을 상상하며 적기도 한다. 아이들 없이 여자들만의 여행을 계획해 보기도 하고(물론 주말을 낀 짧은 일정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최근 8년 사이 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모임을 계획하기도 한다.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에서 이제는 아는 동생과 후배로 남은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이따금 싱글 때 홀로 조조영화를 봤던 것처럼 현재 상영중인 영화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 아이들과는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전시회 일정을 찾아보고 이따금 맛집을 순례한다. 그간 못했던 운동을 하고 언젠가 해 보고 싶은 운동을 써 보며, 서점에서 읽지 못했던 책을 마음껏 읽는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나는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 





*위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하였으며 더 많은 글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따뜻한 관심 부탁드려요.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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