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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Jan 04. 2021

역할을 강요하지 말 것

아이 고유의 영역을 지켜주자는 약속

                                                       

무더운 여름날 밤, TV 프로그램에서 김창옥 강사가 열띤 강연을 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내용은 아이가 태어나고 변화하는 일상에 대한 강연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만삭인 배의 무게가 남다르게 커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곧 태어날 쌍둥이의 출산이 임박해짐에 따라 나와 남편은 첫째 아이가 동생들의 얼굴을 마주할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걱정이 됐다. 아내가 임신을 하면 남편도 덩달아 임신한 것처럼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고 하던데.. 남편은 나보다 더 첫째를 신경 쓰고 있었다. TV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며 내게 말했다. 

 “왕좌를 빼앗긴 왕의 심경을 너가 알아? 재모가 지금 딱 그 기분일 거라고..”

 “나는 왕이 아니라서 그 기분은 모르겠고.. 근데 그게 눈물을 흘릴만큼 슬픈 일인게냐?”라고 물었다.


사실, 첫째에게 동생이 하나가 아닌 둘이 생기는 현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다.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동생에 대한 존재와 두 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실제 얼굴을 맞닥뜨릴 아이의 반응이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뭐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는 우리 부부 스타일대로 아마 힘들면 힘든 데로 그렇지 않다면 다행이라 여기며 지나가겠지만, 아이가 처음 겪는 일에는 매번 긴장되고 늘 마음이 쓰인다. 


집에 사다 놓았던 쌍둥이 인형의 효과라고 해야할 까. 

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집 1호는 엄마, 아빠의 걱정보다 꽤 잘 적응했다. 인형놀이를 하듯 분유를 타서 먹이고 잠자는 동생을 토닥여 주거나 모빌을 틀어주는 등 며칠은 즐거워했다. 친정엄마의 손길로 나는 쌍둥이보다는 첫째 재모를 주로 돌봤다. 그리고 백일이 지나서야 겨우 쌍둥이를 조금씩 안아줄 수 있었다. 가끔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과 세 아이가 한 자리에 있을 때면 재모에게 형이 됐으니 형으로써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당부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아직 형과 아우의 개념이 모호한 아이에게 너무 이른 말이 아닌가 싶었다. 또, 동생이 생기는 일이 왕좌를 뺏기는 일처럼 억울하고 참혹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우리가 어릴 때 형이라고, 누나라고, 언니라며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강요 받았던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각자 아이의 성향에 맞게 자기 다울 수 있도록 고유의 영역을 지켜주자고 약속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는 ‘-답다’라는 말이 있다. 앞에 붙여질 수식어에 따라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남편과 내가 서로를 표현하는 방법 가운데 ‘김화영답다, 김화영스럽다’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는 곧, ‘아내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그의 표현에 빗대어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자기다움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지켜낼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게 내 인생의 가장 베스트가 아닐까. 


형 또는 언니라서 동생에게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룰은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해야 하는 상황만 존재할 뿐이다. 첫째라고 듬직해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상황을 인지하고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인식하는 생각이 필요한 것이지. 태어난 순서에 의한 서열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 서열이 순서에 따른 별도의 역할 서열까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바꿔 말하자면, 서로가 평등한 위치에서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 세 아이 모두 남자아이라서 남성 DNA에 내재된 경쟁의 본능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열보다는 서로의 개성과 능력이 각기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을 터득해 가길 바란다. 


그래서 ‘동생이니까’ 무조건 돌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약하고 힘 없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고, ‘형이니까’ 어린 동생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면 더 많은 기회와 나눔이 돌아온다는 시각의 차이를 알아갔으면 한다. 반대로, 동생이니까 형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배려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도 없어야 한다. 세상 어느 것에도 당연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할 테니까. 다만, 각자의 위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내어주느냐 마느냐인 배려의 정도 차이일 것이리라. 


장난꾸러기 삼형제_2021년 새해에 찍은 형제 사진


우리가 생각하는 서열은 각 나이에 맞게 눈높이를 맞춰 헤아리는 것이다. 

다섯 살인 첫째는 다섯 살의 언어와 방식으로, 세 살 쌍둥이는 세 살 높이에 맞춰 도우며 각자의 나이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언제든지 부족한 역할은 서로가 채워주며 빈 공간을 누군가 자연스럽게 보듬기도 하고 가끔은 비워가며 살기도 하고. 우리집 1호는 1호답게, 2호는 2호답게, 3호는 또 3호답게 그렇게 자기다움을 갖고 자라기를 바란다. 다만, 형제로 묶인 세 아이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길 바라고, 나와 남편이 없는 세상에서도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본인들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또, 만족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세 아이의 자기다움이 지혜롭게 서로의 관계에 선한 영향을 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위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아이 고유의 영역을 지켜주자는 약속'으로 편집되어 게재되었습니다. 이외 다른 글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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