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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Jan 08. 2021

아이다울 권리를 침해하지 말 것

30개월 인생을 보내는 중인 우리집 3호는 유독 잘 삐치고 울기를 즐긴다. 한창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보니 달콤한 과자를 모두 입에 집어넣고도 빈 봉지를 맞닥뜨리면 도둑맞은 것 마냥 서럽게 운다. 블록이 서로 잘 끼워지지 않는다고 울고, 미니 자동차가 한 손에 두 개 이상 집어지지 않아서 또 한번 울고. 


같은 개월의 쌍둥이 2호는 딸기를 먹기 좋게 반으로 잘라줬다고 울고, 방금 꺼낸 쿠키가 온전한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부서져 있다고 엄마한테 달려와 대성통곡을 한다. 이를 지켜본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야!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 우는 거야. 너네 지금 오전에만 몇 번을 운 줄 알아?”라고. 

이 말을 듣고 나는 다시 반문한다.

 “왜 세 번만 울어야 해? 슬퍼서 우는데 남녀가 어딨어!”라고.


오늘날 남자의 기대수명이 여자보다 짧아진 근원에는 가슴으로 우는 것이 남자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분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가 우는 것은 생존본능이라고 이해 하지만 성인 남자가 우는 것은 다 큰 남자가 볼썽 사납게 운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내린 눈물의 묘약은 울면서 억눌린 감정이 극한에 치닫고 울음으로 분출되면서 마음을 달래주는 뇌신경물질의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美 심리학자 알레사 솔터 박사는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연구한 결과, 실컷 우는 아이의 질병 회복이 울지 않는 아이들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From. www.humanium.org posted on 'Child Rights Defenders and how to become one', Oct.3, 2019


눈물 말고도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건강하게 알고 있어야만 경쟁이 밀집되고 과잉 흥분 상태의 현실 사회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시작으로, 어렸을 때부터 성별에 상관 없이 본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출하는 방식을 훈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울고 짜증내고 웃고 화내는 감정의 희로애락을, 특히 부정적인 감정 표출의 경우 ‘또 우네? 또 울어?’라는 반응이 아니라 부모와 소통하고 자기 절제의 과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라는 시선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기조절이 힘든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 넘기기란 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참을 인을 수 만 번 새기라고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원래 그런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 인정을 통해 차츰 이를 ‘훈련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이라는 뇌의 새김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를 대하는 부모의 입장은 어느 정도 감정을 절제한 이성의 시선이 드리우게 된다. 


나는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에는 아이들이 집에서 마음껏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고 20분 내지 30분 정도 내버려둔다. 시간이 지나면서 울음이 잦아지는 아이도 있겠지만 억울해 눈물을 간간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따지고 보면 24시간 우는 아이는 없다. 다만, 억울한 마음에 서운한 감정이 어우러져 섭섭한 감정을 쉽사리 돌이키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어느 정도 감정의 골이 풀어질 즈음에야 아이에게 다가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울먹이는 아이에게 나직이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집 아이들의 경우 감정이 복받쳐 울기 시작하면 평균 40분에서 한 시간을 운다. 고역은 이를 지켜보는 부모다. 아이가 운다고 바로 달려가 안아주고 어르기보다는 울 시간을 주도록 하자. 그리고 울음의 최고조를 넘긴 후 무관심한 부모의 태도에 반응하는 아이들을 살펴보자. 의외로 짜증낸 연유에 대해 설명해주다 보면 한껏 울고 난 아이들은 생각보다 울음을 금새 그친다. 울어도 마음에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첫째는 그냥 마음껏 울라고 하거나 아니면 같이 울어주기도 한다. 이를 반복해 훈련하다 보면 공공장소에서 대자로 뻗어 우는 경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우는 횟수가 가끔 줄어드는 경지를 목격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참 많이 벌어진다. 대신, 그럴 때에는 울부짖는 아이들의 상황과 달리 우는 상황을 어떻게 재빠르게 해결할 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길 바란다. 대신 아이들의 짜증으로 동반 상승되는 부모의 짜증을 억누르는 마법의 주문을 한 마디 외치고서 말이다. – ‘It’s okay. 그럴 수 있어!’ 라고 시원하게. 


언제나처럼 자기 주장이 강해진 쌍둥이 2호와 3호는 등원 준비를 하면서 서로 상대의 신발과 양말을 신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2호는 회색 털신을, 3호는 생쥐 양말을 뺏기지 않으려고 서로 손에 움켜쥐고는 도통 놓지를 않는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외친다 –‘잇츠 오케이(잇초키)! 그럴 수 있어!’ 그리고는 재빨리 묘안을 떠올려 해결하고는 등원을 위해 집을 나선다. 


어린이집 앞에 당도하자 마중 나온 선생님이 외친다.

 “어머, 양말이랑 신발을 다 한 짝씩 신었네~!”라고. 


선생님이 오해 하실까 봐 나는 살짝 설명을 덧붙인다.

 “서로 다른 거 신겠다고 싸워서 공평하게 양말이랑 신발 한 짝씩 나눠 신겼어요. 혹시라도 또 싸우면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위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잇츠 오케이! 그럴 수 있어'라는 제목으로 편집되어 게재되었습니다. 이외 다른 글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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