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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17. 2020

어떤 부모가 될까 고민하는 일

처음 누구의 엄마로 불리던 날의 떨림을 기억한다. 남편과 나도 ‘재모 아빠, 재모 엄마’로 불려지기 시작한 간지러운 어색함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보다는 ‘부모’라는 단어의 진중함을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느낀다. 그리고 어떻게 살지 평생을 고민하는 일처럼 ‘어떤 부모로 살까’라는 주제를 세 아이가 커갈 때마다 되짚어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면, 어느새 멀어진다. 가만히 놓아두면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방기한 책임을 져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어떤 책에서 이탁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그 뜻이 너무 선명하여 잊히지 않는다. 아비 역시 스승과 친구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내게 ‘적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또 ‘적절한 표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 구본형,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중




취하는 밤....



















관계에 있어 적절함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참아야지 하면서도 화를 내버리고 밤에는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서 휴대폰에 저장해둔 아이의 사진을 보며 내일은 좀 더 다정하게, 선한 영향을 주리라 다짐하는 사이. 


아마도 나보다 더 나은 세상과 환경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자식에게 간섭하지 아니할 수 없고, 아이는 내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이기에 적절한 객관성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마 그 저변에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로 정서적인 친밀감을 유지해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인생에 대한 조언을 잔소리가 아닌 삶의 지혜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부모의 간절함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어리숙한 부모인 ‘나’와 어린 ‘너(세 아들)’, 서로의 뜨거움을 공유하는 우리의 유아기가 있기에 아이들에게 이해받으려는 부모가 아니라 이해해 주는 부모가 되려는 노력을 해 본다. 언제, 어디서든 길을 잃고 헤매거나 방황할 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무한대로 포용하고 품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애써본다. 


세상에 나아가 깨지고 부딪혀도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충전하고 나설 힘이 생기는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이 될 수 있게 말이다.




*본 글은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중순 이후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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