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리고 228일
버려진다。
버려진다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물리적인 거리와 감정적, 정서적으로 버려진다는 것
함께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과 관심으로부터 방치당한다는 것
그것들 중 나는 아마도 후자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방치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만족할 만한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쏟기에는
'엄마'가 견뎌야 할 상황이 버거웠다.
어떤 날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한, 일관되지 못한 모습들이
어린 나에게는 불안함만 안겨주는 혼란이었다.
그건 마치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을 내내 안고 사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을 지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는 '안정'되었지만
이미 겪은 시간들은 내가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결정적인 지침이 되었다.
'버려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 가장 밑바닥까지 보여주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고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구속하는 일들,
그건 어떨 때는 누군가와 관계 맺는다는 자체가 피로한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 사람은 여기까지, 이런 식의 긴장된 선긋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만나는 관계는 피로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모든 관계가 그런 식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렵고 힘들고 불편한, 그런 일이 되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분명 좋은 사람도 있을 텐데
미리부터 선을 긋고 거리를 둔다.
경험이라는 것은 참 지독한 것 같다.
경험된 습관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세상 모든 관계 중,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의 온 인생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