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그리고 74일
오늘, '엄마'가 뜬금 없는 질문을 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하고 싶지 않냐고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보통은,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지 않냐고
그런데, 나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노라고
물론, 이제껏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글쎄, 과연 정말 '사랑'하긴 했던 건지도 의구심이 든다
나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하고 질릴만큼 질리고도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고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상해
라고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죽고 싶을 만큼 배신을 당하고도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아빠'의 배신이 죽고 싶도록 용서가 안 되는데
그래서 '남자'라는 생물의 마음같은 거 믿을 수가 없던데
의심이 끊이지 않아 어느 누구를 만나도 힘들던데
어떻게 '엄마'는 아직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는 걸까
나보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건지 성향이 달라서인지 모를 일이다
'엄마'와 나는 닮은 만큼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만 선명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