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그리고 146일
오늘, '엄마'가 내 나이 때의 사진을 보았다.
매일 보는 '엄마'의 얼굴은 항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나이의 '엄마'는 어쩐지 낯설어 슬펐다.
왜 나는 '엄마'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냥 '엄마'.
내가 '엄마'를 '기억'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엄마'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그냥,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엄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엄마'의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얼굴은 내가 처음 '기억'하던 그대로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나이의 '엄마'는 내 '기억'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어쩐지 충격이었다.
내 나이의 '엄마'는
이미 초등학생인 딸과 두 살 터울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의 '나'는 여전히 '엄마' 딸일 뿐이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그저 '우리 엄마' 딸일 뿐이다.
그런데 고작 내 나이의 '엄마'는 살아온 시간 동안 두 번째의 고비를 겪고 있었다.
여자에게 남자의 배신은 어떤 것일까.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 보았고
배신 아닌 배신도 겪어 보았지만
그건 그저 어떠한 법률적, 규범적인 약속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관계일 뿐이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맞닥뜨렸을 때는,
충격, 분노, 배신감, ... 이 이상의 어떠한 단어들로도 다 설명될 수 없는 감정들...이
온몸을 휘감았을 것이다.
화를 내야할지, 울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려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막연히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엄마'는 상처를 받았다.
절대 상처받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는 충격을 지나 분노가 찾아온다.
'엄마'는 분노했고 화가 났다.
그리고 분노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건 그런 일이 아닐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이 있다.
잊으려고 해도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떤 기억들은 다시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의 상처를 알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무관심해도 되는 면죄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엄마'는 종종 우울해 했고 종종 혼자만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으며, 종종 나를 귀찮아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어렸다. 그래서 그런 '엄마'는 나에게 상처였다.
어쩌다 기분이 조금 괜찮은 날은 다정했다가
다시 무언가 '엄마'의 기분을 건드리면 다시 나를 귀찮아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엄마'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는 혼란을 주었고 그것은 불안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다.
내가 유독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한결같은'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물론 지금의 나는 그것이 '엄마'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여자'일 수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제라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엄마'는 안쓰러운 사람이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보호와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끼니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보살펴야 했던,
하지만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서도 스스로 견디고 삶을 견뎌야 했던,
안쓰러운 사람.
요즈음, 난, '엄마'를 보면 마냥 안쓰럽고 문득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때때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때가 있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겹고 버겁게 버텨온 시간들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엄마'가 내 나이를 잊고 '나'를 둥지 안의 새처럼 보호하려고만 하는지 이해한다.
그것은 '엄마'가 그토록 받고 싶었지만 절대로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일 것이다.
물론, 나는 때때로 그런 '엄마'에게 '반항'한다.
그래서 다투기도 하지만 전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야 '거의' 완전하게 알 것 같으니까.
요즘 나는 농담처럼 '엄마'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한다.
-엄마, 다시 태어나면 꼭 내 '딸'로 태어나. 그럼 내가 받은 거 전부 다 돌려줄게.
라고.
이런 얘기는 절대로 진지하게 할 수 없다.
나는 '다정'한 말을 배워보지 못해서 어색하고 쑥스럽다.
그저 농담인 듯, 하지만 이 말이 절대적인 나의 '진심'이라는 것을 '엄마'는 눈치 챘을까 모르겠다.
-엄마, 다시 태어나면 꼭 내 '딸'로 태어나. 꼭, 그렇게 '우리'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