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내 아이에게 배우는 나이
“엄마, 세계사 노트 정리한 거, 잘 외웠는지 문제 내주세요.”
2학기 개학하자마자 중간고사가 한 달 앞이라는 사실에 분개하던 중학교 2학년 첫째는, 요즘 시험준비로 바쁘다. 멀리 광주에서 이모랑 사촌동생이 놀러 왔는데도, 방문을 굳게 닫고 중세와 근대 부분 요점정리를 해 온 것이다.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그냥 눕고 싶었다. ‘내일 할까?’ 간곡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놀고 싶은 유혹을 끊어내고 계획대로 공부한 노력이 가상해서 공책을 받아 들었다.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교황권이 약해졌고, 근대에 구교를 비판하며 신교가 등장했다. 어쩌고 저쩌고. 암기에 약해서 역사 점수를 포기했었던 엄마도 ‘면죄부’는 알지. 어허, 이 녀석, 잘못 적었네, ‘면벌부’라니.
“푸딩아, 면벌부가 아니고 면죄부일 거야.”
“아녜요, 엄마. 교육과정 바뀌어서, 면벌부로 쓴대요. 그렇잖아도 선생님이, 주변에 이거 모르는 사람 있으면 알려주라고 하셨는데, 엄마한테 알려드렸네요. 앗싸.”
서둘러 인터넷 검색해 보니 2003년부터 교과서에는 면벌부가 정식 명칭으로 쓰여왔단다. 세상에, 타이밍 기막혔다. 2002년 수능시험 본 엄마는 모를 수밖에.
아들 가르치려다가 되려 녀석에게 배웠다. 나만 당할(?) 순 없지. 오늘 출근하자마자 동료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거 아세요? 요즘 학생들은 면죄부를 면죄부라고 안 부른대요. 글쎄……”
*사진 : Unsplash (Wim van 't Ei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