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감할 것인가
일 년에 두 번, 가장 덥고 가장 추울 때, 남들 다 방학하고 휴가 갈 때마다 하필 '군사학기'였다. 특히 2학년 여름 군사학기는 잊을 수가 없다. 발목을 접질렸는데 훈련에 열외 했다간 F학점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목발에 의지해 다니다 나중엔 반깁스마저 풀어버렸다. (정확히 10년 뒤 후유증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려고 하면 발목이 먼저 알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수시로 퍼렇게 멍이 들곤 했다.)
철제 프레임에 온갖 짐까지 채워 넣어 20kg가 된 배낭에, 소총까지 짊어지고 뙤약볕 아래 2시간씩 매일 걸었다. 발바닥에는 물집이 세 겹이나 잡혔고, 디딜 때마다 물집 안의 물이 저벅거리는 걸 느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빈틈없는 24시간이 더 죽을 맛이었다. 어느 한 녀석이라도 몰래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멍청한 실수를 하게 되는 날이면, 다 같이 벌구보를 뛰거나 바닥에서 굴러야 했다. 난데없이 새벽 3시 30분에 사이렌이 울리면 헐레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배낭 싸고 전투복 입고 연병장으로 뛰어 나가야 했다. (지금도 웨이에엥 하는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데 엉엉 우는 여자 귀신 목소리를 들었다, 귀신이 떼로 울더라, 그 기기한 소리를 추적해 보니 어느 종교 동아리 아이들이 옥상에 나가 울고 불고 있더라, 게다가 거기에 우리 대표도 있었다......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래 제일 열받는 순간이었고, 다혈질이자 행동파인 나는 당장 그 대표로 추정되는 아이를 찾아갔다. 그는 순순히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아니, 당당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우리'가 서로 의지하는 게 뭐가 나쁘냐, 네가 좀 이해하라며.
제일 열받는 순간을 다시 고쳐 쓰며, 빳빳이 고개를 쳐든 그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너희' 때문에 '너희를 제외한 우리'가 피해 입지 않도록, 자야 할 시간에 침실을 벗어나 소란 피우지 말라고. 한 번 더 그랬다가는 이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겠노라, 그날엔 밤새 함께 굴러보자, 협박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너희'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한 순간이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수없이 '우리'와 '너희' 사이에서 고민했다. 근무평정을 잘 받을 수 있고, 돋보이는 성과를 내면서 승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에 불러주고 꽂아주는 '라인'을 타야 한다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아예 대 놓고 '내가 키워주마, 그러니 나한테 잘해' 광고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매사에 완고했던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나는 영리한 조언을 따르지 못했다. 아니 증오했고 저항했다. 편 가르기를 하느니 혼자로 남겠다고 하면서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그들처럼 '너희'와 반목하는 편을 택했던 거다.
군대뿐이겠는가. 전역 후 이직한 직장으로의 첫 출근은, 그녀들이 한 판 붙는 장면으로 볼썽사납게 시작되었다. 한 사무실에서 마주 보고 일을 하면서도 사사건건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고, 대수롭지 않은 것도 따져 묻고 큰 소리가 오고 가고 삼자대면까지 해 가며 감정을 마구 써 댔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참 괴로웠다.
다수인 편에서 손짓했다. '당신도 우리 편이 되어줄래요? 여기에는 끈끈한 유대와 쇠줄처럼 질긴 의리가 있답니다. J와 맞서서 함께 싸웁시다.' 팀장마저도 J를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녔으니, 그 편에 슬쩍 끼는 것이 잘 된 처세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대쪽 유전자가 뻗쳐 올라와, 그 손짓을 외면하고 변두리에 남기로 했다. J는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직장에서 이토록 모욕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걸까. ‘그들’은 한 사람을 그토록 무시하고 괴롭히면서, 어떻게 정의로운 편을 자처할 수 있는 걸까.
뉴스, 신문기사, 유튜브 영상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내가 클릭했던 영상과 동류(同類)인 것들만 들이민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하다 보면, '우리'에 갇혀 지내게 되고, 곧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확신하게 된다.
<공감의 반경>을 쓴 장대익 교수의 강연에서, 뜻밖에도 위로받았다. 학자답게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 좁고 끈끈한 유대에 갇혀서 '너희'를 혐오하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멸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나는 설득당했다. 특강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책을 주문하고, 특강에서 소개되었던 넷플릭스 다큐 <The Social Dilemma>까지 챙겨봤다.
어떠한 공감이 더 많은 것을 끌어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공감의 반경>에서 이야기한다. 잠시 손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끈질기게 실천하자고 촉구한다. 이런 연구를 해 온 학자들이 있다면,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해 왔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내 글은 진정으로 공감해 왔는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소수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명분하에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우리'를 이간질한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을 끌어안고 더 많은 '너희'와 화해하자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읽고 생각하고 쓴다.
*사진: Unsplash (Markus Spis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