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들의 독서모임, 글쓰담
'날씨와 얼굴'은 이슬아 작가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엮은 책입니다. 신종 감염병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를 겪으며 '기후위기'를 키워드로 쓴 글들이 주를 이룹니다.
1부는 '동물'에 대해서, 2부는 택배노동자, 장애인, 이주여성 등 '소수자'에 대해서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부에서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고민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읽힙니다.
브런치 작가들의 온라인 독서모임 '글쓰담'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아래의 발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글상자 안의 문장들은 모두 '날씨와 얼굴' 본문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1. 칼럼이라는 장르
칼럼은 '신문지상의 시사문제나 사회풍속 등을 촌평하는 난(欄)'으로, '사설이 사론(社論)을 대표하고 정치·경제·사회에 속하는 중요 사항을 거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정에서 일어난 일부터 자연이나 계절의 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소재로 삼을 수가 있고, 한 사람의 필자가 주관적인 감상을 서술하는 경우가 많아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감을 주기도 하는 글'입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슬아 작가의 칼럼은 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어요. 논리와 데이터로 무장한 글보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토대로 쓴 칼럼의 설득력이 더 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럼을 평소에도 즐겨 읽으셨나요? 이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연대란 고통을 겪은 어떤 이가 더 이상 누구도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이다. '부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최대한 다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 간호사, 결혼·출산·양육을 경험한 여성 등 제가 속한 다양한 연대의 일원으로서 칼럼을 쓰고 싶어 졌어요. 만약 어디선가 연재 의뢰를 받는다면 칼럼 쓰기에 도전해 볼 의향이 있으신가요?
2. 내가 쓸 수 있는 칼럼의 주제와 키워드
어떻게든 해보기로, 가능한 덜 나쁘게 실패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나 아닌 존재, 살아보지 않은 삶, 가보지 않은 장소,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헤아리는 데서 작가의 쓸모가 겨우 탄생한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 그것은 슬픔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미래를 꿈꾼다는 말과도 같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와야만 할 미래다. 사랑으로 가슴 아픈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들을 진정으로 듣는 사람들이 그 미래를 오게 할 것이다.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해야 한다면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말. 그러다 보면 더 많은 걸 수호할 수도 있게 된다는 말.
저에게 이 책은 이슬아 작가 혹은 '이슬아 장르'에 입문하는 첫 책이었습니다. 책 한 권에 너무 성급한 걸 수도 있지만 반했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그'에게 작가이자 실천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어요.
글쓰담 작가님들께서도 남달리 관심 갖는 분야가 있으시다면, 그래서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주제에 대해 사회적 연대를 촉구하고 싶으시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지요? 차별받았던 경험,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불편감, 뉴스를 보며 눈물을 훔쳤거나 분노했던 기억에서 출발해 보셔도 좋겠어요.
3. 공유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아래의 주옥같은 문장들을 필사하며 이 책이 주는 깊은 울림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동물) "돼지를 먹는다"보다 "돼지고기를 먹는다"가 더 고급 문장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그 말이 당장의 식사가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의 사체를 먹는 야만적인 행위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근원적인 양심의 가책을 지우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귀엽고 웃긴 동물 영상과 이미지가 범람한다. 동물을 이렇게까지 귀여워하는 시대는 없었다. 한편 동물을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시대 또한 없었다.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혼 이주 여성) 누군가에게 소속된 존재로 취급하지 말라고. 며느리나 아내나 엄마의 역할로 축소하지 말라고. 그들은 자신을 일방적으로 가르쳤던 어제의 한국 사회와 작별을 고한다. 내일의 한국 사회에 자신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시각장애인) 그와 걷다 보면 거리의 모든 색과 굴곡이 새삼스럽다. 성은 씨는 훈련된 청각과 촉각을 동원하며 울퉁불퉁한 세계를 횡단한다....... 존중은 '마음의 눈' 같은 말로는 구현되지 않는다. 성심성의껏 대체 텍스트를 마련하는 게 비장애인이 할 일이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죽을 때까지 다른 언어를 배우고 헤아리는 것이다. 언어란 모두에게 영원한 슬픔이자 기쁨이므로, 맹인을 위한 이야기는 더 충분해져야 한다.
(청소 노동자)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나보다 더 고달픈 사람을 생각했어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 같다고 나는 적었다. 고달픈 나와 고달픈 당신 사이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는 걸 안다. 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의 강함을 순덕 씨 얼굴에서 본다.
(위정자) 어떤 정책을 거론할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단어마다 자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누군가가 그들 마음속에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들이 내뱉는 문장은 지금보다 생생하게 뛸 것이다. 나는 '진짜 질문'과 '진짜 대답'을 그리워하며 국회방송을 시청한다....... 자신이 내민 통계가 실제로 어떤 풍경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면 어떻게 목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침묵을 잊을 수 없다. 침묵이 시끄러울 수 있다는 걸 당신도 알 것이다....... 건조한 문장으로 결코 표현되지 않는 고통 말이다. 나는 이것을 슬퍼하는 수장들을 원한다. 취약한 친구와 이웃과 동료를 곁에 둔 수장들을 원한다. 가장 취약한 이들의 해방과 자신의 해방이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수장들을 원한다.
(소수자)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생의 숙명이 그렇다....... 스스로를 차별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차별에 관한 기준을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지 않는다면 구시대적인 차별 발언과 행동을 무심코 저지르기 쉽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섬세해질수록 억울하게 배제되는 시민의 수가 줄어든다....... 차별받고도 저항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자립준비 청년)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할 수 있는 연대도 있다. 부모가 기본값인 질문을 건네지 않는 것, 고아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 보호대상 아동에 대한 이미지를 고정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에서 딱 한 문장만 꼽는다면? 그에 대한 답을 하며 발제문을 맺겠습니다. 그럼, 다음 모임에서 또 뵈어요.
내 생활양식은 분명히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세계는 다시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좋든 싫든 혼자일 수 없다는 감각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일들을 관두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