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초단편 소설 쓰기
그래서, 소설을 어떻게 쓸 건데?
막막했다.
일상이 아무리 바빠도 드라마, 웹툰을 두루 즐겨볼 만큼 이야기를 좋아한다. 리모컨을 쥘 권력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서울의 달’, ‘그대 그리고 나’ 같은, 부모님 취향의 드라마를 봤었다. 어른이 된 이후, 사관학교 다니는 동안은 암흑기였다. 학업성적과 기숙사 생활마저도 점수화되는 생활에서 TV를 켜는 행위는 사치였다. 베개를 끼고 엎드려 여유롭게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3학년 때 시험이 끝나고, 딱 한 번, 저녁식사를 건너뛰고 <오페라의 유령>을 한 자리에서 읽은 게 다였다.
장교가 되고 3교대 병원 생활을 하면서는 더했다. 토익 공부하기 바빴기에, 책을 펴거나 TV를 볼 여유는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아이를 둘 낳고 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딸 서영이'를 정주행 했다. 2박 3일 간 식사는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잠도 줄여가며 전편을 다 봤다. 몇 번인가 엉엉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날이 밝는 걸 봤다. 고등학교 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느꼈던, 무언가 맑게 정화되는 기분, 새로운 눈이 떠지는 듯한 순간을 경험했다.
가족과 1년 간 미국에서 지내면서도 '스카이캐슬', '미스터 선샤인', '눈이 부시게' 등을 섭렵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다른 이의 삶을 잠시 살아보았다. 자기 계발서나 TED, 세바시에서 주는 것과 다른 메시지였다. 그들은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고민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딛고 일어선다.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고 같이 마음 아파하고 기뻐한다. 그게 이야기의 힘이다.
스토리를 좋아하기에, 쓰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감동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에세이가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이야기라면, 소설은 내가 결말까지 창조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에세이를 쓸 때에는 저절로 겸손해지지만, 소설에서는 모든 인물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 때로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도 내 방식대로 다시 쓸 수 있다. 과감하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이라고는 써 본 적 없는 초보가, 중편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겠다며 작법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분량을 채웠다. 그 후로 막막했다. 내가 계속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 소설 쓰기> 책을 펴 들었다.
"초단편이라면 우리도 가능하다. 짧으니까!"
짧은 글이 요즘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초단편 거장'의 의견에 동의한다. 출퇴근길에 주변을 둘러보면,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읽는 사람들이 많다. 두꺼운 책은 펴 들기까지 상당한 결심과 준비를 필요로 하겠지만, '만만한' 웹소설은 클릭과 드래그만큼 쉽게 읽힌다.
이 작법서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작가만의 꿀팁들이었다. 딱딱했던 군대생활에서 잊고 있었던 내 상상력.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 엉뚱한 가정, 말도 안 되는 의심. 이런 것들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니 용기가 생겼다. 2023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마흔의 여자, 두 아이를 둔 엄마의 평범한 욕망 조각들이, 초단편 소설의 단골 소재가 될 수 있다니.
'분량 다이어트'라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초단편은 짧은 지면에 완결된 스토리를 풀어내야 하니, 구체적인 상황 설명이나 설정 묘사는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알 법한 사건을 활용하거나, 간략한 문장 혹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상황을 간략히 제시하는 전략이 소개되었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써 내려갈 수 있는 실력이 없더라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의 말미에는 이 모든 작법을 참고하되 자유롭게, 되도록이면 짧게 쓰라고 역설한다. 퇴고할 시간에 차라리 한 편을 더 쓸 것. 캐릭터나 배경설명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독자가 놀랄만한 반전을 만드는데 집중하라고도 조언한다. 분량과 자체설정 마감에 쫓기는 나에게, 이만큼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쓰다 말고 서랍에 처박아둔 글을 손 봐서, 그럴싸한 '초단편 소설'로 재탄생시켜봐야겠다.
* 사진 : cottonbro studio (https://www.pexels.com/ko-kr/photo/6037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