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함께 읽고
읽고 쓰는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글쓰담' 독서모임. 1월 중순부터 작법책을 함께 읽으며 시작된 모임은 어느새 독서의 영역을 확장하는 단계에 있다. ‘새날' 작가님의 추천으로 함께 읽게 된 첫 소설책이 정용준 작가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보다 내가 두어 살쯤 어렸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 그분은 책 속 인물들처럼 말을 더듬으시던, 중년의 피아노 학원 원장선생님이셨다. 만화 주인공처럼 단발기장의 멋진 곱슬머리에 콧수염을 기르셨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항상 황홀한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하셨다.
"도, 도, 도레미"
매번 말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두어 번 더듬으셨다. 순진한 어린이었던 나는, 악보와는 다르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짧은 도' 건반을 두어 번 끊어쳤다.
"아, 아니. 도, 도, 도레미 말고 도, 레, 미, 한 번씩. 아, 아, 악보대로 연주해야지."
아이들은 뒤에서 키득거리며 선생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그게 싫었다.
부원장이셨던 우아한 아내와 교습소를 운영하셨고 두 분은 서로 존대하셨다. 어린 원생들을 진지하게 대하시고 열정을 담아 가르치는 모습을 보더라도, 원장선생님은 동정이나 놀림받을만한 분이 아니셨다.
‘비장애인' 같은 용어에 대한 고민도 없던 시절이었다. 눈에 보이는 ‘다름’마저 '병'이나 ‘결함’으로 인식하고 숨기고, 차별대우를 받아도 문제 삼지 않았던 때였다. 이제 우리는 안다. 조금 달라 보이는 외양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성적 결함이 훨씬 더 치명적임을.
이 소설에서는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사회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이웃들이 연대한다. 자신의 ‘문제’를 말끔히 고쳐서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더라는 뻔한 해피엔딩은 없었다.
오히려 그 연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각자의 상처를 함께 어루만진다. 주인공은 홀로 가정을 꾸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고 되고, 이웃들과 힘을 합쳐 모자(母子)의 삶에 끼어든 ‘빌런’을 쫓아낸다. 언어치료를 맡았던 원장은 원생들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받은 상처를 치유해 간다. 혼자였다면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함께’가 갖는 힘은 실로 크다.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혼자 싸우고 이겨내려다가 실패하고 주저앉아도, 하소연하거나 위로받을 수도 없다면? 나와 다르다고 남을 밀어내고, 그것으로 자신이 주류이고 우세함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책을 읽지 않았다면, 혼자만의 독서에 그쳤다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까. 글쓰담 독서모임 안에서, 오늘도 한 뼘 더 성장했다.
* 사진 : Unsplash (Hannah Bu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