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라떼는 우리를 키우고, 우리는 라떼 곁을 지킨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 김지숙, 고경원, 김산아, 김나연, 이형주, 『동물에게 권리가 있는 이유』, 나무를 심는 사람들, 2022, p. 150.
라떼는 어린 소년일 때 엄마 품을 떠나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고 두 아이들 손에 길러졌다. 나는 한 발짝 뒤에서 경제적 지원을 하며 아이들 어깨너머로 작은 생명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다. 라떼가 아프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을까. 설치류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이 아줌마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햄스터를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밤에 홀로 피는 장미처럼, 라떼는 어둠 속에서도 본능에 따라 열심히 뛰고 먹이를 찾아 먹고 베딩을 파고 옮겼다. 높은 벽에 둘러싸여 외출도 못 하고, 여자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산다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불면의 낮을 보내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나 우울은, 먹을 것을 쌓아두고 호위호식하며 똑똑한 머리로 많은 것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간에게나 주어진 사치일지 모른다. 아플 때 아얏! 비명을 지르고 인상을 찌푸리며 방에 드러누울 수 있는 것도, 약해진 틈을 보여주면 천적에게 공격받을까 노심초사하는 어떤 동물들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라는 걸, 햄스터와 함께 살며 깨달았다.
우리 집 햄스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은, 앞선 이야기들을 읽은 분들은 눈치채셨을 거다. 우리가 찌득이나 라떼에게 해 준 게 별로 없다는 것을. 하루에 두세 번 산책을 시킨 적도 없고, 안아주거나 놀아준 적도 없다. 라떼가 내 이부자리에 파고들거나 소파로 뛰어 올라와서 곁을 내줘야 했던 적도 없다.
화장실을 정해두고 오줌을 누라고 훈련시킨 적도, 쳇바퀴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가르친 적도 없다. 집안을 어지르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면서 정리정돈을 해야 했던 적도 없다. 라떼가 큰 소리를 내거나 쿵쿵 뛰어다녀서 이웃에 사과한 적도 없다.
우리는 먹거리와 물을 채워주고 집 청소를 해 주고 가끔 병원에 데려가고, 낮에 잘 자고 있는지, 혹시 또 탈출하지는 않았는지 오며 가며 들여다본 것뿐이다. 그런데 라떼는 그보다 훨씬 많은 걸 주었고, 우리 마음을 성장시키고 공감의 반경을 넓혀 주었다.
고맙다, 라떼야.
어떻게 부르든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의 친구였고 앞으로도 친구로 남겠지만,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성스럽게 이름을 짓고 불러주듯이 이제부터는 그들에게도 친구이자 동반자라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 강형욱,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혜다, 2019, p.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