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의 집
햄스터는 밤새 수십 킬로미터를 헤매며 먹이를 구한다. 그들이 호시탐탐 가출할 기회만 엿보는 것은 이러한 야생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 해도, 먹을 것 많고 아늑한 자기 집을 놔두고, 험난한 바깥세상으로 도망치다니, 참 야속하다.
라떼가 우리 가족이 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손가락 세 개만 했던 작은 아이라, 자기 키의 몇 배나 되는 벽을 뛰어넘을 줄은 몰랐다. 그가 어떻게 탈출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이지만, 아마도 디깅박스(digging box)와 벽 사이에 낀 채로 벽을 타고 오른 것 같다.
작다고 방심한 채 사육장 뚜껑을 열고 잔 우리 잘못이었다. 둘째 녀석이, 토요일 늦잠을 즐기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라떼가 사라졌다고.
주인 잃은 집을 재차 확인하고 문득 화장실로 고개를 돌렸는데 라떼랑 눈이 딱 마주쳤다. 조그만 녀석이 궁궐만 한 세면대 아래에서 무도회장 바닥만 한 매트를 잘근잘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다가, 인기척에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서 있었다.
남편과 둘째 아이가 화장실로 재빨리 들어가 문을 닫은 후,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개구쟁이 소년의 위험천만한 외출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집안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주방 매트나 탁자 다리, 이불자락이 멀쩡한 걸로 봐서는 외출이 아주 짧았던 것 같다.
화장실 하수구에 발이 끼거나 높은 턱에서 떨어져 어디가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면섬유를 씹어 삼킨 것 같은데 뭔가 해로운 걸 집어 먹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집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다. 그날 햄스터 주치의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선생님은 라떼가 움직이는 걸 살펴보고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더니 골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의심되는 증상이 없는데 작은 동물을 엑스선대에 눕힐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며칠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그 뒤로 별 탈 없이 지냈지만, 가출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고 다시는 단 몇 초라도 문을 열어둔 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고 라떼는 콧수염이 멋진 중년 남성이 되었다. 어릴 때 온갖 틈을 비집고 다니던 과잉행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고, 걸음걸이에서도 연륜이 느껴졌다. 그래서 또 방심했다. 그가 집 청소 하는 날을 노리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언제나처럼 내가 오염된 톱밥을 떠내고 있는 동안, 아이는 작은 이동장에 라떼를 넣고 간식도 먹이고 돌보고 있었다.
"어? 라떼가 어디 갔지?"
당황스러운 질문은 곧 퍼렇게 질린 탄식이 되었고, 공포가 우리를 덮쳤다. 온갖 불길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행히 위기 상황에서 내 몸이 머리보다 빨리 움직였다. 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온 방의 문을 닫았다.
햄스터가 좋아할 만한 곳은? 자문자답하며 재빨리 살폈다. 마지막 발견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어두침침하고 좁고 숨기 딱 좋은 곳, 바로 소파 밑.
"쉿, 조용히 해 봐!" 숨 죽이고 귀를 기울이니 소파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라이트를 들이대고 살펴보니 소파 아래 공간에서 헤엄치듯 움직이는 작은 아저씨가 보였다. 제발, 돌아와.
라떼가 술래잡기에 신이 난 바람에, 우리는 진땀을 뺐다. 하나도 재미없다, 이 놈! 작전을 변경해서 나는 소파 왼쪽, 아이는 소파 오른쪽을 맡았다. 햄스터를 못 만지는 엄마는, 라떼를 오른쪽으로 몰아간 후 운동용 토닝볼로 재빨리 벽을 만들어 도주로를 차단했고, 아이는 가까스로 라떼를 잡았다.
운이 정말 좋았다. 김정희 수의사의 <햄스터> 책에는 햄스터가 탈출했을 때 구조하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 가장 와닿는 부분이 있어 인용한다.
햄스터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케이지(cage)가 있는 방에 고립시키기만 해도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넓고 다양한 물품이 가득한 케이지에 사는 햄스터들은 탈출 후에 스스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햄스터가 만족할 만한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185쪽)
맞는 말이다. 라떼가 자기 집을 좋아할 수 있게 꾸며주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의 위험한 도주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되뇔 수밖에 없다. 라떼 어르신께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제발 철 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