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y pleasure

건강관리도 재미가 있어야지

by 지영민

병아리 강사 시절이었다. 대전 모 보건소에 실습지도를 나갔다. 하루는 보건소 선생님들과 5일장에 치매 예방 캠페인을 나가게 되었다. 학생도 초짜, 교수도 초짜. 우리는 꿈에 부풀었다. 상인들이 좋은 일 하신다며 박카스 뚜껑 따서 손에 쥐어 주시고, 나도 좀 줘 보라며 구름 떼 같이 몰려든 고객님들께 리플릿 나눠드리랴, 간이 정신상태 검사(MMSE: Mini-Mental State Examination) 해 드리랴, 바빠서 죽으면 어쩌지, 이러면서.


터미널에서 뿜어져 나온 배기가스와 어딘가 낡은 분주함이 감도는 동네. 좋게 봐야 1980년대에 지은 게 분명한, 누런 타일로 외벽을 장식한 상가건물이 늘어선 좁다란 골목은, 21세기 사람들과 물건들로 5일 만에 활기를 띠었다. 비록 노인이 9할 이상이었고 젊은이는 우리뿐이었지만. 능숙한 보건소 선생님의 지시대로, 부푼 꿈에 찬 손길들이 간이 테이블과 파라솔을 펴고 오늘 하루 무상 '판매'할 건강정보 리플릿, 포스터, '건강 100세' 볼펜 따위를 늘어놓았다. 그 순간의 비장함은 프로대회에 처음 데뷔하는 축구선수 못지않았다.


요 며칠 학생들은 치매 걱정할 나이가 아닌데도 다른 학생에게 간이 정신상태 검사를 '당해보고' 본인도 검사자가 되어 보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내가 장터 출동 전 불시 테스트를 봐서 실습 점수에 반영하겠다는 사악한 겁박질로 부추긴 덕분이기도 할 테지만 아이들의 열정은 나를 흐뭇하게 했다.


아이들이 외우다시피 한, 별거 아닌 듯 보이는 12개의 문항은 의외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자식들 분가시키고 배우자도 먼저 보내고 홀로 빈 둥지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치매뿐만 아니라 어떤 질환이 생겨도 늦게 발견되기 일쑤다. 특히 치매는 온전한 판단력과 기억력을 좀 먹는 병인지라, 병식(病識)을 가지고 스스로 의사를 찾아오기도 어렵다. 간이검사에 몇 분만 투자하면 자신도 모르던 병을 찾아내서 더 나빠지기 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어르신, 치매 검사해 드려요. 리플릿 한 번 읽어보세요. 볼펜 받으세요."

우리의 간절한 외침은 떠들썩한 장터에서 힘없이 비실거리고 있었다.

'아이, 귀찮아. 짐도 무거운데.'

할매, 할배의 피곤한 눈빛들이 이렇게 말하며 지나쳐 갔다. 우리 좌판은 이 시장 제일가는 비호감, 비인기 코너였다.

"학생들, 실망 마요. 원래 이런 거야. 오죽하면 우리가 보건소에 안 있고 시장까지 찾아다니겠어. 아픈 환자나 병원에 찾아오지, 관심 없어요."

맞아요. 선생님. 저도 잠시 잊고 있었네요. 완판 신화를 쓰지 못한 초보 '마케터'들은 터덜거리며 보건소로 철수했다.




그로부터 십 년 남짓 지난 지금은 어떤가. 신종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이제는 건강한 일반인들, 특히 젊은 층도 건강관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 위험인자를 줄이고 행동을 절제하며 즐거움을 포기하는 방식으로는 그들에게 어필할 수가 없다.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의 김난도 교수팀이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건강관리는 맛있고 쉽고 즐거워 계속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야 healthy pleasure.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맛있으면서도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품을 찾아 먹고, 스마트 기술이나 디바이스를 이용하여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휴식을 취하고, 거리두기로 인해 변화된 사회적 네트워크를 대체할 비대면 플랫폼을 이용해서 재미와 만족감을 채워가며 정신건강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건 건강관리 전문가인 나에게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즐거움이 건강지침을 따르도록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니. 사람마다 즐거움의 버튼이 다른 곳에 있을 테니 '정확한 지침과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건강관리 서비스는 예술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높아진 관심이 '건강'이라는 종착역에 닿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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