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
이대로 괜찮은 걸까
소문인지 사실인지 모를 괴소문이 들렸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인근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성관계를 하여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당시 초등 저학년이었던 우리 집 큰 아이보다 불과 네댓 살 더 먹은 아이들이 임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에' 시나리오에 우리 아이들을 대입해 보니 성교육이 이른 시기부터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되짚어 보니, 우리 집 큰 아이 성교육은 2살 터울 동생이 잉태된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가 경쟁자의 등장에 충격받지 않도록 하는 예방 조치라고 생각하며, 동생이 생긴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읽어 주었다. 부모의 사랑으로 잉태된 동생이,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엄마가 여러 가지 변화를 보이고, 부모가 건강한 아기를 낳고 기르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결국 태어난 동생을 만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아이의 입장에서 알려주는 그림책이었다. 책 내용처럼 초음파실에 큰 아이를 데려가 태아 심박동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큰 아이에게 물으니, 엄마가 불룩해진 배에 무언가를 대고 검사를 받던 장면만 어렴풋이 기억난단다. 엄마인 내가 아마도 생명에 대한 교육이 진부하고 당연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내용을 꾸준한 교육으로 이어가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이제부터라도, '생명'의 잉태, 후손을 낳고 기르는 것이야말로 성(性)이 지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아이들과 꾸준히 대화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 아이들은 사랑에 기반한 성관계의 결과로 생명이 잉태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대비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들로부터 잘못된 정보, 자극적이고 왜곡한 성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아이들이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혼란을 경험할 거라는 걱정이 앞선다. 부모가 각자 뛴다고 자녀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까. 힘없는 나는 왜곡되고 과장된 이미지가 마치 정상인 것처럼 미디어에 나돌고 있다는 걸, 우리 아이들에게 이따금 부르짖으며 자기 위안을 삼는다.
아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잉태하는 의미의 성(性)을 이해한 후에는, 자기 몸과 마음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미리 알고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 아빠도 그런 변화를 경험했고, 그것이 너희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어른이 되는 정상적인 과정이므로 축하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때, 자칫 놀리거나 장난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도록, 정확한 용어를 쓰되 차분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반성하면서 배웠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동의(consent)에 기반하여 상대방의 성적인 결정을 존중하는 법, 상호존중하는 관계를 만드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이것이야말로 넓은 사회에서 믿을만한 어른들, 또래들과 함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배워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부모가 가르치는 것보다 학교,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더 적합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 구성애 선생님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을 기점으로 성교육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터부시되던 '성교육'이, 온 가족이 보는 공중파 TV에서 방영되었다. 구성애 이전의 성교육은, 이른바 '순결교육'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 여학생들이 별도 교실에 모여, 알아들을 수 없는 은유법으로 한 시간 내내 잔소리를 들은 후, 난데없이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생리대를 아무도 모르게 싸서 버리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2022년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성교육을 받고 있을까. 코로나 여파로 몇 년간 학교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성교육도 온라인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되거나 전문가에 의한 일회성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법에서 정한 성폭력 예방교육만으로 아이들이 생명, 사춘기의 신체 정신적 변화,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걸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이고 좁은 범위의 이해에 갇히는 건 아닐까. 성은 피해야 할 것,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성교육이 구시대에는 순결교육, 현재에는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출발하였을 때 어린아이들이 성(性)에 대해 어떠한 첫인상을 갖게 될까. 일회성으로 그치는 교육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아이들의 인지발달에 맞추어 어릴 때부터 건강한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점차 깊이를 더해가며 꾸준히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성(性)은 쉬쉬해야 할 것, 내가 직접 말하기는 민망한 것, 자칫 오해를 살까 싶어 꺼내기 두려운 화두인 것 같다. 이런 풍토가 하루아침에,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바뀔 수는 없을 거다. 어른인 '나'부터 새롭게 배우고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요즘 남용되는 용어인 것 같아 쓰기 두렵지만, 건강한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 사진 출처 : Unsplash (Drew H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