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소중한 너
"어디가 부러졌어요? 손가락 뼈가? 쯧쯧, 머슴아들이 꼭 그렇게 어디를 부러뜨리고 그러더라고, 우리 손주도 이번에 중학교 갔는데 다리가 부러졌대요, 글쎄. 얘는 2학년이라고? 어쩐지, 우리 손주보다 크네..."
방금 진료실에서 뼈를 맞추고 반깁스를 한 채 엑스레이 검사를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 있는데, 붙임성 좋은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아이의 보호자는 나 혼자였는데, 왠지 앞집 할머니를 병원에서 만난 것 같이, 잠시나마 반갑다. 남편은 먼 나라 일본에 출장을 가 있어서 국제전화로 이 소식을 듣고 한 걱정을 한다. 치료 잘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아이를 안심시키면서도, 수술을 해야 하나, 깁스만 해도 되나, 성격이 급해 의사의 결정을 미리 점쳐 보느라, 나는 지금 벌레 먹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질풍노도의 중학교 1학년, 그 많던 진로시간에 실컷 방황했다. 공부만 하는 인생이 무슨 재미냐, 평범하게 살면 되지 꼭 좋은 대학에 가야 되냐, 스카이 간다고 다 성공하냐고, 하나 같이 옳은 소리로 엄마의 말문을 막았다. 목소리도 변하고 입술 끝에 콧수염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 2학년이 되어서야 예전의 착실했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월요일은 분리수거하는 날. 한방에 끝내기 위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애들까지 불러냈다. 엄마는 신학기 책장 정리 후 추려낸 책 상자를 들었고, 큰 애는 플라스틱, 작은 애는 비닐과 스티로폼을 맡았다. 그때는 큰 아이 손뼈가 부러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탁구 하다가 어디에 부딪혀서 손가락이 조금 까졌다고 해서, 아팠겠다, 밴드 붙여라, 그랬던 게 다였다.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고 살펴볼걸. 아픈 걸 잘 참는 것까지 엄마를 닮을 필요는 없는데.
아이는 밤이 다 되어서야 실토했다. 낮에 탁구대가 잘못 펴지면서 손날 부분을 세게 내리쳤다고, 지금은 낮보다 좀 더 아프다는 것이었다. 뭣이라, 놀라서 손을 살펴보니 손날과 손바닥 부분까지 멍이 올라오면서 꽤 부어있었다. 촉이 온다. 골절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붕대를 감아주고 얼음팩을 대 놓고 아이 담임선생님께 내일 오전 진료로 늦을 예정임을 알렸다.
다음 날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중수골 골절, 즉 손가락과 손목을 이어주는 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Boxer fracture (권투선수 골절)'로 두꺼운 뼈 끝을 지나 얇아지기 시작하는 지점이 부러져서, 뼈 조각위치도 어긋나 있었다. 어제 낮에 분리수거도 하고, 부러진 줄 모르고 움직이고 만져서 더 틀어졌겠지 생각하니 또 속상하다.
의사는 일단 뼈를 맞추겠단다. 부분마취는 선택사항이라고 했지만, 나는 마취든 진통이든 사전처치를 해 달라고 했다. 탈구나 골절이 되어 "폐쇄정복"을 하는 환자들을 많이 봐 왔다. 인대나 근육을 강제로 잡아당겨서 관절이나 뼈를 원래 모양대로 만드는 그 처치에는 항상 진땀 나는 통증이 따랐다. 우리 아이가 아무리 잘 참는다고 해도, 그런 통증을 고스란히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뼈를 맞추고 반깁스가 굳는 동안, 학교 선생님께 진료 결과를 알렸다. 의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할는지 판단해야 하니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한다고, 그 진료까지 봐야 해서 오늘은 결석해야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ㅇ' 종합병원의 가장 빠른 예약일은 정확히 일주일 후란다. 일하던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가 추천했던 'ㅅ' 병원 손 부위 전문 아무개 교수가 생각났다. 마침 오늘 진료여서 콜센터에 문의하니 얼른 오라고 한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무개 교수 진료실 앞에 도착했다. 우리 순서는 맨 뒤, 십 수 명의 환자가 대기 중이었다.
"오랜만에 들큰 도넛 먹을까?"
"좋아요."
"그럼 엄마가 사 올게. 여기 앉아 있어."
병원 1층 들큰 도넛 매장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절반만 초콜릿을 씌운 동그란 빵과 설탕물이 입혀진 고리 모양 빵을 샀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남이 만들어 주는 카페라테를 마시기로 했다.
"아직 네 이름 안 불렀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오른손에 반깁스를 하고 내 폰을 들여다보던 아이에게 알록달록한 설탕가루가 박힌 초코 도넛을 건네주었다.
"네, 아직이요. 어, 이거 진짜 오랜만에 먹네요."
아이는 당분을, 나는 카페인을 보충하며 그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성장판 일부를 다쳤지만 이 정도는 큰 문제없겠다고, 폐쇄정복이 이만하면 잘 되어서 수술은 필요 없겠다고 한다. 수술을 하든 안 하든 뼈가 붙기까지 6주가 걸린단다. 그 6주 후, 아이는 난생처음 공교육에서 성적이 나오는 시험을 보게 된다. 아이가 겪을 불편함을 걱정하면서 거의 동시에 첫 중간고사를 떠올리는 나는, 유난스러운 학부모다.
어디까지가 걱정이고 어디까지가 욕심일까. 몸과 마음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다가도, 공부를 잘했으면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리더 경험도 해 봤으면, 그래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 가졌으면. 끝도 없는 바람으로 아이를 다그치고, 잘 안 되면 실망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내 아이는 빛나는 성과로 치장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이렇게 소중하다. 이 아이 손가락 뼈 하나만 부러져도 온 세상이 잿빛이 될 정도로. 이 아이에게 딱 오늘만큼,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는 곁에서 손잡아 주고, 너의 훗날도 괜찮을 거라고 등을 토닥여 주는 존재이고 싶다.
"엄마가 나랑 같이 분리수거했다고, 선생님께 이야기했어요?"
"어? 아, 그랬지. 너 다친 얘기 하다가..."
"선생님께서 그걸 애들한테 얘기해서, 저 오늘 갑자기 효자 됐어요. 손가락 부러졌는데 엄마랑 분리수거한 효자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