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서리 정리함 3개로 부족했다. 이건 링이 크니까, 저건 핑크 골드라서, 요건 담수진주라서, 그건 세일을 해서, 미련하게 사 모은 결과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내가 봐도 이건 심했다. 깊이 뉘우치고, 단골 스토어 알람을 취소했다. 액세서리 가게를 발견하면 쇼윈도를 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명품을 사지는 않는다. 왜냐, 비싸면 다양하게 구비할 수 없으니까, 나는 명품을 깔별, 디자인별로 살 만큼 부자가 아니니까. 만 원짜리 한 두장으로 살 수 있는 '가성비' 귀걸이만 구입한다. 유해물질이 녹아 나온다거나 알레르기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세상에는 소비자 건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범죄자들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써지컬 스틸이나 은침으로 된 것만 고른다.
나는 간호사, 게다가 아프기로 소문한 피내주사를 스스로에게 할 수 있을 만큼 '독한' 사람이다. 당연히 귀도 스스로 뚫는다. 아무리 독해도 "으" 소리가 절로 나오고 식은땀이 난다. 셀프로 귓불을 뚫다니, 뭐 하는 짓인가, 그냥 피부과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가까스로 성공했다.
한 달간, 상처에 최대한 오염물질이나 물이 닿지 않도록 관리한다. 자극이 가해지면 상처 부위가 심하게 부으면서 봉와직염이 될 수 있기에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다. 중간에 피부가 심하게 붓고 뜨거워지고 빨개지거나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면 당장 의사에게 달려가야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나 때'는 가게 직원이 손도 잘 안 씻고 즉석에서 귀를 뚫어주기도, '엄빠' 몰래 친구들이 서로 귀를 뚫어주기도 했었다. 그랬으니 종종 끔찍한 꼴을 보기도 했다. 지금 내 아이가 그렇게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예쁜 귀걸이를 더 많이 착용하고 싶어서 귀를 두 군데나 더 뚫다니,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봐줄 사람도 없는데, 무언가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혹시 마음이 허하고 아픈 건가? 아니면 수표 몇 장을 써 가면서 사 모은 귀걸이를 하나도 빠짐없이 써먹겠다는 의지가 발현된 것일까?
사춘기 때는 그렇게 고민이었던 두둑한 젖살은 사라진 지 오래다. 두 볼이 움푹 파이고, 것도 모자라 웃기라도 하면 가로 줄이 두세 개 생길 만큼, 외모가 변했다. 손을 씻으면서도 가급적 거울 들여다보는 시간은 3초를 넘기지 않는다. 귀걸이라도 하면 기미와 주름살로 갈 시선이 그쪽으로 분산되지 않을까? 그런 영리한 계산으로 이것저것 달고 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어서, 적어도 나는 젊든 늙든 평생 나를 봐야 하니까.
사람은 평생 변하는 '꽃'이라, 가장 아름답고 귀하다고, 할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아기 때는 그저 귀엽고, 여드름 난 사춘기 때는 미완성다운 잠재력에서 빛이 나고, 주름살이 늘고 흰머리가 나도 여전히 그 나름 사랑스럽다. 평생 한 가지 모습이라면 나도, 남도 얼마나 지겹겠는가. 그게 할머니의 주장이었다.
사람은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끊임없이 변한다. 나이를 먹어도 수많은 고민에 부딪히고, 그 고민이란 건 만날 때마다 참 새롭다. 내 나이 마흔에 이런 고민해도 될까,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미숙할까, 나잇값도 못 하네, 이런 생각에 고민을 어디에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뭐 어떻니, 마흔이면 아직 애기인데, 그러셨겠지만 아직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기 어려웠다.
'나이 듦'과 '성숙'을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고, 이제는 인정한다. 사람은 평생 변하고 그 변화의 방향이 어떤 한 곳으로 수렴하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가끔 후퇴하고 실수를 반복한다고 해서 그게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되뇌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듯, 내면 가꾸기도 종종 실패한다. 다이어트에 실패했다고 식단관리와 운동을 놓아버리면 안 되듯, 마음 다스리기도 어떤 형태로든 이어가야 한다. 매일 한 페이지라도 글을 읽고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말을 뱉자고 다짐한다. 중요한 인생의 과제를 앞두고 불안할 때는 '마음의 달인' 앱을 켜고 명상을 한다. 스스로 껴안는 자세로 양 어깨를 두드리며, 지금 힘들구나, 속상했구나 말해본다.
변해 가는 내 모습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귀걸이를 고르고 향수를 뿌리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 좋은 생각하고 많이 웃자 다짐해 본다. 귀걸이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만 사자 다짐을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