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하게 올려다보며 혀 짧은 소리로 "엄마느은, 긍데 머 하고 놀아요오?"하고 묻는 막내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평일에는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주말에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엄마는, 항상 분주했다. 밀린 집안일 하느라 바빴고 그러다가 걸핏하면 직장에 불려 나가기 일쑤였으니, 아이다운 호기심에 물어봤을 거다.
"너희한테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고, 너희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 보는 게, 엄마한테는 노는 거야."
'놀다'라는 단어의 뜻에 들어맞지 않는 대답에,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엄마는 그게 재미있나, 나도 크면 저렇게 놀아야 되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씁쓸히 웃으며 그저 버티는 게 최선이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나 일도 서서히 자리가 잡혔고, 나란 '둔자'도 이 바닥에서 구르다 보니 급한 업무에 안테나를 세우고 '사(事) 톡'을 수시로 확인하면서도, 표 안 나게 휴식모드로 전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가게 되면서, 바야흐로 물리적인 해방까지 맞았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 무릎에 앉겠다며 귀여운 엉덩이로 후진해 오지도, 매달려 치대지도 않았다. 섭섭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주말에 1시간, 통 목욕하는 게 낙이 되었다. 이게 '놀다'의 범주에 드는 건지 아리송하지만, 나의 일상 중 '그것'과 가장 가까운 것을 꼽는다면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많고 많은 취미생활 중 하필 통목욕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이것마저도 실용적인 목적과 닿아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인사고과를 위해서 체력관리를 해야 했는데, 출산의 여파인지, 허리가 유난히 긴 체형 탓인지, 허리 디스크라는 때 이른 '만성 퇴행성' 질환이 찾아왔다. 인체 조직에 병리적인 변화가 일어나,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점차 나빠지기만 한다는 무시무시한 질환이. 고약하게도 한 번 걸리면 평생 달고 다녀야 하니 부디 늦게, 되도록 천천히 와라, 그렇게 빌었건만. 아픈 게 무서워서 인생 최대 콤플렉스인 처진 눈꺼풀에 주름 한 줄 넣는 그 흔한 수술도 못 받는데, 아무리 의술이 발전했다지만 까딱 잘못하면 전신마취로 대수술을 하고, 게다가 누워서 남의 수발을 받아야 한다니. 절대 있어서는 아니 아니 될 일이었다.
이런 다급하고 호들갑스러운 마음이, 나를 운동이라는 벼랑 끝에 서게 했다. 두 번의 임신을 겪으며 배꼽을 중심으로 홍해 바다처럼 쩍 갈라졌다가, 가까스로 필수 분량만 재생된 복부 근육. 잘록한 게 보기 좋으니 너는 되도록 적은 게 좋은 거 아닌가, 하는 무식함과 편견으로 방치했던 허리 주변 근육. 이 둘을 강화하는 운동만이 살 길이었다.
'생존 운동.' 생전 처음으로 진심과 정성을 담아 운동을 하니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재벌집 사모님도 아니고 매번 마사지샵에 가서 수표를 턱턱 내며 속속들이 풀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꼬맹이들한테 잘근잘근 밟아 달라고도 했으나 그게 하루 이틀이지 애들이 무슨 죄인가. 남편은 자기 코도 석자라 무얼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소금 목욕'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글쎄, 황산마그네슘이 피곤하고 아픈 근육을 회복시켜주고, 피부의 생기를 채워준다네!, ' '아로마 오일이 감각을 안정시켜 주고 스트레스를 낮춰 주는 건 알지?' 하는 광고 문구에 혹했다. 소금 봉지에 적힌 '주문'대로 효험이 있기를 바라며 욕조 물에 소금을 풀고 몸을 담갔다. 내게 필요한 걸 알아준 고마운 '주문' 덕분인지, 포함된 성분이 정녕 효과를 발휘한 건지, 통증이 옅어지고 몸도 마음도 기분 좋게 풀어졌다.
'또 나를 찾아왔구나. 오늘도 운동하고 많이 뻐근하니? 고생 많았어.' 아로마 오일을 뒤집어써서 반들반들하면서도 분홍빛을 내뿜는 소금이 알갱이마다 반짝거리며 나를 반겼다. 한동안 그 소금을 쟁여 두고 내심 든든해했다. 소금 알갱이들이 욕조 물에 단체로 다이빙하면서 '차르르' 소리를 내는 게 듣기 좋았다. 집과 직장 두 군데로 출근하는 것도 모자라, 헬스장 운동까지 '쓰리잡'을 하면서 시달렸던 나를 내려놓았다. 그 당시에만 해도 방수폰이 아니어서 '사톡'을 남편에게 맡겨놓으니, 통목욕하는 시간만큼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다.
소금물에 몸을 담그고 생각했다. 아직 30대인데, 손목 관절낭이 찢어져 물혹이 생기고, 허리 디스크가 찢어진 틈으로 밀려나가고 얇아졌구나. 2년 터울 형제를 앞에 안고 뒤에 업고, 무거운 짐을 턱턱 들어 올리고, 억척스레 직장도 다니며 애면글면했던 몇 년이 스쳐갔다.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이라 생각하면서도, 내 몸이 서서히 닳는다는 사실에, 그보다 그걸 외면하고 있었다는 서러운 깨우침에 마음이 쓰라렸다. 형체가 있는 몸과 달리,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 정신은 세상 풍파에 오히려 단단해질 거라 믿으면서도, 어딘가 멍이 들고 실금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단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들 엄마로, 아내로, 한 사람의 떳떳한 시민으로 잘 살아내려면,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운동도 제법 몸에 익고 피로감도 줄어서 배쓰밤으로 충분하다. 깨끗이 닦아놓은 욕조에 따뜻한 물이 반쯤 차 오르는 동안, 배쓰밤이 꿈처럼 떠다니며 투명했던 물을 서서히 자기 색깔로 물들인다. 거품이 많지 않아서 친환경일 거라고 믿어본다. 나의 취향과 기분을 배려하듯 색상과 향이 다양해서 마음에 든다. 어떤 향일지 맞춰 보라며, 넌지시 색깔을 단서로 내어 놓는 게 재치 만점이다. 오늘은 어떤 걸로 할까, 고를 때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배쓰밤에 적힌 '주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오직 나만을 위한 축복의 속삭임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향기를 입는 시간'이 곧 시작되니까.
* 사진 출처 : Pixabay (5460160, Tomasz mikolajczyk, omame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