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호흡

숨 한 번 편하게 쉬며 살래요.

by 지영민

한 달간 유럽여행을 하며 몸을 질리도록 봤다. 옷 입은 몸, 벗은 몸, 죽임을 당하는 몸, 먹히는 몸, 성스러운 몸, 살찐 몸, 아름다운 몸. 아이를 많이 낳아 농사지을 노동력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 칭송받아 마땅할 여성의 몸에는 유방이 수십 개쯤 달려있다. 인간은 매일 고해성사를 해도 천국에 가기 힘들던 금욕의 시절, 성스러운 여성의 몸에서는 굴곡을 찾아보기 어렵다.


(좌) 아르테미스 여신상, 바티칸 박물관 (우) 두초 디 부온인세냐의 「마돈나 루첼라이」일부, 우피치 미술관


여성 해방 이후의 문명사회,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나는 몸에 얽매이지 않고 산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안 하니까,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긴 대로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작년 11월에야, 마흔이 다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그동안 제대로 숨 쉬어 본 적이 없음을. 나는 횡격막을 골반 방향으로 편안하게 잡아 내리지도, 아랫배를 이완시키지도 못했다. 아랫배 안쪽 근육이 굳어버려 짧아졌는지, 손으로 풀어주려니 통증까지 느껴졌다.

"흔한 일이에요. 배가 나오지 않게 숨을 참거나 힘을 주고 있어서요. 허리가 드러나는 옷을 입으니 아랫배까지 부풀려 가며 숨을 쉬지 못하죠."


신석기 농경사회에서 부족을 이끌던 여성은 풍만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더 먹고 되도록 안 움직이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을까. 신성(神性)이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몸의 굴곡을 숨기기 위해 가슴을 붕대로 동여매야 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모습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내가 타고난 모습을 부정하고 몸을 기형적으로 만든다. 삼각팬티, 브래지어에 눌린 모양 그대로, 사타구니와 옆구리의 지방이 억지스럽게 자리 잡는다.


남성의 몸도 이러한 강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굵은 팔뚝, 굵은 허벅지, 일명 말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단백질 셰이크, 닭가슴살을 먹어가며 몇 시간씩 무게를 치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강함과 남성성은 큰 근육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걸까. 우리는 고작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보다, 형태를 뛰어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부르짖으면서도 '바람직한' 몸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한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졌다. 40년 간 중력을 받은 관계로 턱 쪽으로 흘러내려간 얼굴 피부와 근육, 그 덕에 무너진 턱선과 눈꺼풀. 자외선에 노화까지 합심하여 양볼에 크고 작은 기미를 열 군데쯤 만들어 놓았다. 오른쪽으로 더 맹렬히 씹어대고 자꾸 왼쪽으로만 누워 자는 습관 탓에 심해진 좌우 비대칭. 나 말고는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볼 일 없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진다. 이걸 가려 말아, 그런다고 다 가려지지도 않잖아,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지. 그렇게 화장대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진다.


심호흡을 통해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데, 나는 호흡을 하면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형태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던 몸을 생각했다. 허리가 꽉 조이는 슬랙스를 예쁘게 소화하기 위해 흉곽으로만 달싹거리며 숨을 쉬었던 나를 만났다. 거울을 보고 흉곽부터 윗배, 아랫배, 골반 저 안쪽까지 있는 힘껏 부풀리며, 다짐한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배를 빵빵하게, 자유자재로 부풀리며 편히 숨쉬기로.


* 이미지 출처 : Pixabay (Rosy)

keyword
이전 14화'편히 죽는 법'을 검색한 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