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너희가 보내 준 응원을 돌려줄게.

by 지영민

'사회적'이라는 말과 '거리두기'라는 양 극의 단어가 억지로 짝꿍이 되어 살았다. 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은 고립이라는 절벽으로 몰아넣어야 했다. 이렇게 모순적인 시대에 탄생한 말 중 하나가, '반려식물'이다.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라는 뜻의 '반려'는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도 비유적으로 쓸 수 있으니, '반려식물'이야말로 모순된 시대가 빚어낸 몇 안 되는 타당한 표현일 것이다.




바이러스가 생존하고 개체 수를 늘리는 장소를 ‘저장소'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가장 주된 '저장소'이자 면역력이 제로에 가까운 무방비 상태의 '숙주'가 바로 사람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만나야 살 수 있는 인간(人間)이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위기에 맞닥뜨렸다. 외로움이라는 걸 이렇게 처절하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경험해야 했던 적이 있었을까.


'ㅇ'학교 보건관리자로 일하던 당시에 코로나의 침공을 받았다. 그 학교는 학생, 교직원 중 일부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군대 학교였고, 한 명만 코로나 비슷한 증상을 보여도 그 사람을 분리하고 기숙사 곳곳을 소독해 대고 매일 같이 모든 사람의 증상을 감시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 사람이 '저장소'이자 '숙주'로 간주되던 비참한 시절이었다.


나 먼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증상이 있는 잠재적 숙주'는 다수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양보해 준 사람으로 격리가 아닌 보호를 받아야 마땅했다. 보호조치가 되어 방 안에서 홀로 식사하고 약을 챙겨 먹는 그의 노고에 감사해야 했다. 혹시 증상이 심해지지는 않는지, 혼자 방에 있으니 외롭거나 불안하지는 않은지 매일 체크했다. 다행히 스마트폰이 있으니, 친구랑 수다라도 실컷 떨고 온라인 게임도 하고 스트리밍 영상도 보면서 무료함을 달래 보라고 권했다.


'보호' 중인 사람들을 관리하는 나도, 집과 일터만 오가며 힘들고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던 그 시절, 완전히 말짱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당시 내가 가장 애용하던 것이 카카오 '같이 가치'의 마음날씨 메뉴였다. 간단한 질문들에 답하여 내 마음을 진단해 보고, 추천해 주는 명상 가이드나 '힐링사운드'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의지하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하니,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려고 쇼핑라이브 화면을 뒤적이다가, '반려식물'을 분양한다는 방송이 눈에 들어왔다. 일회용 머그컵으로 만든 화분 하단에 물만 채워주면 물을 빨아올리는 심지를 통해 식물에 물이 공급된단다. 관리도 쉽고 나 같이 무심한 사람도 잘 키울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해서 향기 나는 카네이션 화분 몇 개를 주문했다.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기숙사 방에 돌아오면 작고 빨간 꽃봉오리와 수줍은 듯 은은하게 펴지는 향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하루종일 방에만 있었다고 불평하는 법도 없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면 그저 고맙다고 줄기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물, 햇빛, 공기만으로도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초록잎을 내었다. 수영장이나 필라테스 센터에 못 가서 답답하다고, 외식 한 번 편하게 못 한다고 투털거리다가도, 묵묵히 물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받아 푸른 생명을 지켜내는 이 작은 식물들을 보면 부끄러워졌다.




얼마 전 '마스크 감옥'에서 풀려났다. 뾰족이, 동글이, 넙적이, 옆 자리 동료에게 입양 보낸 주렁이, 한 철 내내 빠알간 기쁨을 주고 유명을 달리한 카네이션 세 자매. 이 친구들이 내 옆에 있었기에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해방된 봄을 맞았다. 식목일을 맞아 플라스틱 머그컵에서 토분으로 분갈이를 했다. 왜 진작에 해 주지 않았을까. 받기만 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오랜만에 '같이 가치' 마음날씨에 들어가니 흥미로운 심리테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떤 꽃일까?' 식목일이니 내 마음에 꽃을 심는 마음으로 열한 개의 문항에 답해보았다. 올 봄에는 천일홍, 다음에는 어떤 꽃으로 살아볼까. 촉촉한 단비가 내리는 식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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