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지 못해서 설레고 아프다

오늘도 '돈'이 되어주길 소망하며 '글'을 쓴다

by 지영민

그녀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언제쯤 이 짓이 끝날까.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그만 쓰게 되길, 그녀는 소망한다. 요즘 '괜찮은 곳'의 입사지원서는 전자 게시판에 정해진 글자 수만큼 질문에 맞는 답을 쓰는 형태다. 한글문서를 편집하거나 글자 수를 따로 세어보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그러나 웹에 쓰는 것이다 보니 따로 복사본을 만들어 놓지 않거나 임시저장하는 것을 깜빡하고 브라우저를 닫으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직장생활 십수 년 끝에 이직을 처음 경험하는 그녀는, 엊그제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정신이 팔려 실수로 브라우저를 닫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짜증 나도 돈 벌러 가야지?'를 스스로 되뇌며 입사지원서 게시판에 다시 접속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임시저장 주기가 짧아서 웹페이지가 자동으로 '새로고침'되는 통에, 내용을 날리기도 수차례. 한글 파일로 복사본을 만들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것마저 복잡한 과정을 하나 더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모니터 하나에 경력 관련 서류 여러 장을 띄워 놓고 번갈아 여닫으며 지원서를 쓰려니 다시 짜증이 올라왔다. 아이가 어릴 때 쓰던 책상을 쓰고 있어서 듀얼모니터를 둘 공간도 없었다. 결국 프린터 잉크가 아깝지만 모든 서류를 출력해 놓고 종이를 들춰가며 입사지원서를 쓴다. 성적 증명서에 적힌 깨알 같은 숫자가 흐릿하게 보인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지금 이게 뭔 지랄이야, 전국으로 발령받으며 일하기 싫다고 관둘 때는 언제고, 이제는 월급도 안 보고 정규직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입사지원서를 쓰고 자빠져있네, 탄식을 해 댄다. 머리는 언제 감은 건지, 누가 보면 뭐 하는 년인가 싶을 거다. 작가지망생답게 논리적이면서도 감동을 주는 답변을 쓰기 위해, 소풍 가기 딱 좋은 봄날, 입사지원서 빈칸을 채우는데 예술 혼까지 불사른다.


잉? 이곳에 입사하면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싶냐고? 글쎄요. 일단 채용공고에 적힌 내용 위주로 적을 수밖에요. 질문이 좀 이상합니다만, 혹시, 귀사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일해도 되나요? 크흣. 채용공고에 적힌 문의처에 전화라도 해 볼까 하다가, 지원서 내기도 전에 꼴똥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서 그만둔다. 그녀는 이 질문에 무진 고민을 한 끝에, 내가 그동안 시키는 대로만 일을 했나 보다, 왜 내가 하고 싶은 직무를 꿈꾸지 않고 일을 했었나, 지난 십수 년을 반성한다.


돈을 벌기 위한 글쓰기가 이뿐일까. 그녀가 흠모하던 ㅁ출판사에서 중단편 소설 원고를 받는단다. 상금이 자그마치 사암백만 원, 제세공과금을 떼 가도 애들 한 달 학원비는 버는 거네, 땅 파도 십원 한 장 안 나오는 개똥밭에서, 일이백 번다는 건 얼마나 숭고한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상금은 당선이 되어야 받는 건데, 쯧쯧, 그 당연한 걸 생각 안 하는 게 틀림없다.


브런치에 썼던 글 조각들을 늘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배열해 본다. 막연히 등장인물 위주로 쓰기에 급급했다 보니 도무지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아, 급하게 글 조각 여러 개를 더 만들어 붙인다. 웹에 내어 놓으려니 차마 쓰지 못했던 부분을, 혼자 보는 화면에 과감한 척 써 내려간다. 머릿속처럼 시원하게 풀어지지 않잖아, 으악, 오늘은 고마하자. 엉덩이가 아플 때까지 쓰고 나서 원고지 틀에 넣어보니 공모전에 내야 할 분량의 절반을 가까스로 넘겼다.


분량도 못 채웠고, 지가 쓴 이야기에 스스로 설득당하지도 못했고, 문장은 어설프기 짝이 없고, 울화가 치밀어도 파일은 일단 저장하고 화면을 껐다. 자기 평가 하나는 기똥찬 그녀. 괜히 넷플릭스 영화를 내리 다섯 편쯤 보고, 애들이 정중히 거절하는데도 수학, 영어 문제를 같이 풀고 난리를 치더니, 원고 파일을 다시 열기까지 꼬박 열흘이 걸렸다. 그녀는 순수하지 못해서, 돈 벌려는 희망에 설레었다. 또 순수하지 못해서, 돈 벌어보려고 애먼 글을 쥐어짜다가, 쓰는 기쁨을 빼앗겼다.


그녀는 못생긴 얼굴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왜 이리 울적한가,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써서 잘 엮고 메우고 광을 낸들 뭐가 달라지나, 내 팔자는 언제 고칠 수 있나, 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부르짖었나. 입사지원서 질문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걸 물어대며 자신을 몰아세운다. 지난 2주 간 '돈'이 될 수도 있는 글을 쓰면서, 그저 쓰고 읽고 공감하는 기쁨을 소진했으니, 브런치에서 그 기쁨을 다시 채우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네가 글을 쓰는 쓸모가 아니었냐고 그녀에게 되묻는다.

keyword
이전 04화글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