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겨울, 손과 손톱도 관리해야 된답니다.
"엄마, 그거 흑색종일 수도 있대요. 병원 가 보세요!"
'닥터 K의 이상한 해부학 실험실'을 수 차례 완독하고, 꿈이 의사인 초등 5학년 막둥이가 이렇게 말하니 심장이 철렁했다. 간호사이지만 피부과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왜 미처 몰랐나 생각하며 인터넷을 뒤졌다. 오른쪽 엄지손톱에 갈색의 세로 줄무늬가 생겼는데, 이것이 '악성 흑색종(malignant melanoma)'의 증상일 수 있다는 거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점(點)'도 다시 보고 검진을 받으란다, 이런 제길.
올해 3월, 길었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가장 해 보고 싶던 것이 '네일 아트'를 받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손을 많이 쓴다. 대대로 간호사 '언니'들이 손톱에 무얼 바르는 걸 극도로 증오했고, 그도 그럴 것이, 환자에게 처치를 하는 손이기에 손톱은 짧게,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간호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다.
신입 간호사 시절, 매일 같이 수액 놓고 수혈하고 소독을 해 대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 손 씻고 소독약을 만지고 장갑을 꼈다 벗었다 했다. 그 당시 장갑은 손이 닿는 면에 파우더가 발라져 있었는데, 어느 날 장갑을 벗으니 흰 가루가 묻은 엄지 손가락 끝이 칼에 베인 것처럼 3~4mm 깊이로 갈라져 피가 났다. 문제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었다. 상처가 나을 틈이 없이 알코올 솜을 만지고, 로션을 바를 틈도 없이 씻어댔으니, 그 상처로 반년동안 고생했었다.
네일 아트할 때 접착력을 좋게 하기 위해 손톱을 많이 갈아내더니만, 부착물을 제거하고 나니 역시나, 손톱이 극도로 약해졌다. 시시한 스티커만 떼려고 해도 손톱이 휘어 접힐 정도였다. 손톱은 물론이고, 손톱 뿌리 근처의 피부는 병동에서 일할 때처럼 건조해서 쩍쩍 갈라졌고, 손톱 뿌리 중앙 부분이 깊게 파여 아팠다.
연예인이 선전하는 손톱 영양제를 5가지쯤 구입해서 발랐다. 손톱 오일, 손톱 세럼, 손톱 강화제 등,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종류만큼 많았다. 그 영양제들 덕분인지, 내 몸의 자연 재생력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네일아트로 얇아졌던 손톱은 다시 원래 두께로 돌아왔다.
손톱이 거의 회복될 때쯤 보이기 시작했다, 이 줄무늬가. 일단 인터넷의 사진들과 비교해 보니 내 것은 악성 종양처럼 주변 조직으로 파고 들어가는 모양새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바다. 없는 병도 유전, 호발 연령대, 환경을 따져가며 미리 걱정하기도 하므로, 일단 동네 피부과에 가 보았다.
의사는 확대경을 틀어놓고 '병변'을 살펴보더니 모니터에 친절히 타이핑을 해 가며 설명을 한다. 안 좋은 걸로 보이지는 않지만, 0.001%의 확률로 악성일 수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내가 요 근래 아이들 병치레로 단골이 된 'ㅇ'병원 피부과에 예약 전화를 했다.
"동네 피부과에 갔더니 손톱의 악성 흑색종이 의심된다고, 그래서 손톱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고 해서요."
직원이 그 진단명이라면 적합한 분이라며 'o' 교수를 추천해 주었다. 그분 앞으로 예약을 하려고 보니, 제일 빠른 진료일자가 2주 뒤다. 인기가 많은 분인가 보네, 허허, 근데 2주간 초조해서 어떻게 기다리나.
다행히 내 곁에는 "별 거 아닐 거예요," "엄마 진료가 언제라고 했죠," 하며 며칠 간격으로 물어주는 아들들이 있었고, 인터넷의 악성 흑색종 사진이 '내 것'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이따금 확인해 가며 초조함을 애써 누그러뜨렸다.
"왜 이런 게 생겨서, 신경 쓰이게 말이야." 혼잣말을 하며 손톱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종종 가지며 2주를 기다렸다.
드디어 진료를 받는 날. 바쁜 일정 중 때마침 온 '진료 안내 문자'를 급히 보고, 진료일자를 착각하는 바람에 어제 같은 시각에 왔다가 갔더랬다. 다행히 오늘은 제대로 왔다. 기술이 좋아져서 간호조무사가 아닌 키오스크에게 진료 도착을 알리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조직검사는 꼭 그렇게 손톱 뿌리 쪽에 해야 하나. 그래야 정확한 검사가 되겠지. 근데 진짜 아프겠다. 손톱이 변형된다던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러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건, 흑색종 아니에요. 손톱이 얇아졌을 때 뿌리 쪽에 점이 생겨서, 그 색소가 묻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보니까, 습진이 심하신데 보습제 잘 바르세요."
다행이다, 화장도 안 하고 손에 보습제도 안 바르고 가길 잘한 건가. 내 상태를 제대로 보셨군. 원래 물을 잘 안 마시고 손에 뭘 챙겨 바르는 걸 잘 못한다. 그래서 텀블러, 티백, 핸드크림을 엄청 사 나른다. 방마다, 화장실마다, 싱크대 옆, 신발장 위에도 핸드크림을 두는데 잘 발라지지가 않는다.
오늘이 12월 29일. 그래, 결심했어! 새해에는 물도 자주 마시고, 손에 보습제도 자주 발라야지. 마침 새로 산 다이어리에 매주 두 가지 결심을 적고 매일 확인 표시하는 란이 있다. 두 가지 결심은 습관이 될 때까지 목록에 올리고 매일 표시하며 실천할 거다. 작심삼일이라도, 3일마다 다시 결심하면 건강한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새해에는 손과 손톱을 건강하고 촉촉하게 관리해야지.
* 사진 출처 : Unsplash (Federica Giusti, Julia Kutsaeva, Budka Damdinsu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