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싫어하는 신포도
(2020년 여름 작성)
재택근무의 단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손이 많이 간다. 양심고백하자면 성인이 되어 배운 그 어떤 일보다 집안일을 더 오래 해왔는데도 여전히 미숙하다. 대학 진학으로 상경하기 전까지 나는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는 상전이었기 때문이라는 얄궂은 변명을 해본다. 청소며 요리며 빨래를 룸메이트 어깨 너머로 익혔다. 살림9단 엄마에게 정석으로 배운게 아니라 속성으로 습득한 것이기에 당연히 허술할 따름. 먹성 덕분에 음식은 곧잘 만드는데, 진정한 요리란 음식을 먹고 치우는 것 까지 포함이라지. 그 점에서 나는 요리도 못한다고 해야한다.
지금 팔만 뻗으면 닿는 전기포트를 만지작해서 집안일의 요정 지니가 튀어나와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설거지를 대신 해달라고 할 생각이다. 설거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 멀티태스킹이 불가하다. 빨래를 널 때는 TV를 볼 수 있다. 청소기를 돌릴 때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설거지를 할 때는 어떠한가. 가만히 뿌리내리고 선 채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야한다. 집 구조상 TV를 등져야 하고 물소리 때문에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는 것도 시원치 않다.
다음으로 싫은 점, 장비가 필요하며 심지어 소모품이다. 수세미, 고무장갑, 주방세제, 가끔은 철수세미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귀찮은 행동은 한 번 시작 할 때 작정을 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머리카락을 줍는 것과 차원이 다른 귀찮음이다. 수세미의 수명은 언제까지이며 컬러부터 밉상인 고무장갑은 왜 예고도 없이 한쪽 손가락에 구멍이 나는 걸까.
게다가 설거지는 접시를 닦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접시에 물얼룩이 남게 되고 싱크대도 그대로 둬버리면 미관상 영 좋지 않다. 한번 부엌에 발을 들인 이상 가스렌지나 주변 하부장 상판도 싹 닦아줘야하지 않나. 감히 자취생의 최종보스라 칭하고 싶은 음식물 쓰레기와의 조우는 또 어떻고. 귀찮음에 조금만 무시하면 애써 구비해둔 디퓨저 향과 맞짱뜨는 기분나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허나 전기포트를 아무리 문질러도 지니는 나오지 않는다.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 오늘도 나 자신과의 싸움 끝에 어렵게 설거지길에 나선다. 지금 이 곳에서 싱크대까지는 세 발걸음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