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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포도 Oct 19. 2021

호불호 9. 펭귄

펭귄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신포도

(2020년 여름 작성)

매년 4월 25일이 되면 친구들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특정 조류의 사진과 함께 안부를 물어본다. 내가 처음 보거나 참신한 펭귄짤이라며 주접을 떨면 와이파이 너머 만족해하는 내 사람들. 독특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그 날은 바로 세계 펭귄의 날이다. 그렇다. 난 주변에서 알아주는 펭귄 덕후, 펭덕이다. 펭덕의 본분을 다해 살아온 좁은 방에는 펭귄 인형은 물론 펭귄 무늬의 각종 굿즈가 가득 들어 차있다.


뒤뚱거리며 빙하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펭귄의 매력탐구에 있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무리의 사냥을 위해 용감하게 뛰어드는 모습에 감화된 인간들이 관용어까지 만든 퍼스트 펭귄, 은혜 갚기 위해 8천여 km의 바다를 횡단하는 펭귄의 감동 실화, 사람보다 공동육아분담과 부부공동체의 개념이 잡혀있는 펭귄의 부부생활, 이를 가능케 하는 이유로 짐작되는 미친듯이 귀여운 솜털의 소유자 아기펭귄까지. 펭귄이 왜 좋냐는 물음에 답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그렇다고 아무 펭귄이나 들이대놓고 혜자로운 리액션을 바라면 곤란하다. 모름지기 덕후는 본인의 전공에 더욱 변태같은 디테일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내가 좋아하는 펭귄에도 제법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첫째, 단순할 것. 펭귄의 미감을 높여주는 건 심플한 실루엣과 컬러 매치다. 성체 펭귄의 예를 들면 검정과 흰색으로 충분하게 표현 가능하다. 예외로 부리나 머리부분의 노란 포인트 정도는 용납이 가능하다. 타 조류와 달리 날개도 지느러미 수준으로 하찮고 몸매 또한 둥글 푸짐한 펭귄이 특유의 세련된 느낌을 잃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5초만에 뚝딱보고 따라그릴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한다. 여자라고 핑크색 남자라고 하늘색 펭귄 이런 식의 접근은 마이너스다. 마치 귀에 형광 브릿지 넣은 푸들처럼 멀게 느껴진다.


둘째, 사람인 척 하지 말 것. 유아교육 석사학위 소유자이신 모친의 증언에 따르면 펭귄은 공룡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유아동 Pick으로 손 꼽히는 친숙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시장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의인화가 된 변종펭귄 캐릭터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 뽀로로가 그랬고 펭수가 그랬다. 그들은 자본주의 쩐내를 물씬 풍기는 영악한 유사 펭귄에 불과하다. 펭귄은 분명 귀엽지만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매력이 떨어진다. 나의 펭귄 쨔응은 그렇지 않아! 펭덕에게 먹히는 포인트란 그런 것이다. 덧붙이면 내가 수용하는 마지노선은 핑구다. 펭귄에게 대사가 필요하다면 그녀석 정도로 충분하다.


예전에 남극에 촬영을 다녀온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직접 촬영한 펭귄 영상에 눈이 돌아가서 존경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는데, 현실적인 펭귄썰을 듣고 약간 탈덕위기가 온 적이 있더랬다.


“남극 다녀온 이후로 나는 펭귄을 후각으로 기억해.”

“우와 신기하다. 펭귄은 무슨냄새가 나?”

“펭귄들이 부부가 번갈아가며 사냥을 나가는 사이에 한명이 며칠씩 새끼를 품잖아. 화장실을 갈 수가 없는 상태인 거야.”

“아...”

“그 주변에 하얀색으로 빙 둘러서 길이 나있거든. 그게…”

“음, 거기까지 들을래.”


이렇게 적고보니 나는 진정으로 펭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펭귄의 관념적 대상화에 빠져있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덕후의 순수한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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