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는 매번 달라진다
(2020년 여름 작성)
처음에는 좋아하고 싫어하는게 분명해서 쓰기 마냥 쉬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그 와중에 가리는게 있었고 싫던 것에도 어느정도 관용이 생겼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입체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재미있다. 이쯤에서 10년의 시간이 흘러 강산과 함께 변해버린 호불호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만 스물의 나는 싫어했는데 지금은 좋아해 마지않는 것.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명품백을 들 수 있다. 대학들어가고 몇 년이 지나서도 옷과 화장은 나의 관심사 제일 밑바닥에 속했다. 그 때의 내가 보면 남처럼 낯설어할 정도로 지금은 비싼만큼 예쁜 가방과 옷 신발 하나씩 사는 것을 인생의 큰 낙으로 삼고 있다. 가족들이 하나씩 사주시던 가방에 만족하다 기어이 작년에는 나의 회사생활 5년을 맞이해 떠난 안식월 스페인 여행에서 월급을 훌쩍넘는 명품가방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흐뭇한게 내가 배아파 낳은 자식도 이정도로 이쁘기만 할 수 있을까? 내 속에 아슬아슬 그어진 선을 넘는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싫다가 좋아진 것 하나 더. 요즘은 군대이야기다. 군대나 군인이 아니라 군대 ‘이야기’임을 한번 더 강조한다. 특전사 출신 유튜브 채널 여러개에 푹빠졌기 때문일테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도시인과는 차원이 다른 정신력과 성공담에 연신 리스펙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군장병들에게 당연히 가지고 있는 부채감이나 고마움과는 갈래가 다르다. 복학생 선배들의 술자리 불행배틀에 허언 한스푼 첨가된 흔한 레파토리라고 생각했던 군대이야기였지만 일부 극한의 경험담은 색다른 콘텐츠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주작’아닌 신선함을 가지는 몇 안되는 스토리텔링이다.
[TMI - 2021년 퇴고 무렵, D.P. 6편을 앉은자리에서 정주행했다]
그 밖에도 줄줄이 소세지처럼 댈 수 있다. 갓김치, 마라탕, 평양냉면, 시럽 안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막걸리, 트로트, 인디밴드, 한국현대문학, 아무 것도 안하는 주말, 서울의 밤, 이른 아침기상, 롱스커트, 오피스룩, 은반지, 진주귀걸이, 등산 등 10년 전의 나라면 믿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로 열 문장을 너끈히 채울 수 있을 각이다.
그 반대의 케이스도 당연히 있다. 싫어하는 것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퇴거 명령을 내리는 타입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굳이 활자로 남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더 살아야할 긴 인생에 갑자기 다시 좋아질지 모를 일이니까. 더 많은 것을 좋아할 수 있도록 마음 한켠에 여유를 가진 어른으로 살아갈 것이다. 헤어진 남친도 아니고 집나간 입맛이나 지나간 취향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