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혼자서 여는 디저트 파티!

방송작가에서 디저트가게 사장으로 5

by 아임버터
브런치 스토리 커버 5.png 공유 주방에서 시작된 작은 꿈!

지난 글에서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공유 주방에서 디저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디저트 사업 시작! 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디저트를 와르르르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공유 주방은 해썹 공장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판매를 시작하기 전에 갖춰야 하는 서류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 때마다 보고하고 신고해야 하는 서류들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품목을 만들고 싶었던 욕심쟁이는 거대한 서류의 산더미를 마주하게 되었다. 서류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서류만 복잡한 게 아니라 재료를 주방 안으로 들여올 때, 주방 밖으로 내보낼 때의 과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위생에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좋은 의미의 예민함이다)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들여올 때는 주방으로 직접 가지고 들어올 수 없고. 지정된 택배 장소에서 -> 실내 택배 보관함으로 -> 택배 보관함에서 개인 창고로 -> 개인 창고에서 주방으로 깨.끗.하.게 반입해야 했고. 재료를 하나 사더라도 품목별로 서류를 작성해서 보고해야 했다. 또한 하루에 얼마만큼의 재료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보고도 해야 했다.


그뿐이게? 완성된 디저트 또한 '자가품질검사'를 통해서 디저트가 안전한지. 즉 인체에 유해한 세균이나 물질이 들어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판매가 가능했다. 다행히 한 번에 통과 했는데. 왜 다행이냐면 이게 품목별로 받아야 하는 검사라서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또 불합격이 되면 판매 불가는 둘째치고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까지 전량 회수당한다고 하니 불합격이 되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나긴 과정을 통해 공유 주방에 입성한다 한들 바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판매하진 못한다. 당연하다. 내 물건을 사줄 사람이 없으니까... 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유 주방은 카페처럼 고객과 1대1로 마주하지 못한다. 공유주방에는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 이외에는 아예 출입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료를 납품하는 직원들조차 주방 안으로 들어올 수 없고 지정된 장소에 택배를 두어야 한다) 카페처럼 문을 열어 놓으면 불특정 다수가 와서 구경하고, 마음에 들면 사가고, 이런 시스템이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굳이 물건을 미리 만들어 둘 필요도 없던 것이다. 만들어도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판매를 하느냐! 타깃에 따라 달라지는데. 일반적인 고객은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면 된다. 자체 홈페이지를 제작하거나, 스마트 스토어, 인스타, 쿠팡 등등 개척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자리 잡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리고 내가 주 타깃으로 생각했던 사업자 고객, 즉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에게 디저트를 납품하는 것은 온/오프라인으로 발품을 팔아 거래처를 확보하면 됐다.


나는 보여줄 사람이 없더라도 일단은 디저트를 계속 만들었다. 샘플용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디저트를 만들 필요가 있긴 했지만 그 이유보다는 안정화를 위함이 컸다. 디저트는 같은 사람이, 같은 레시피를,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환경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판매전 안정화를 위해 끊임없이 만들었다. 낮에는 방송작가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만드는 일이 많았다. 난 그 시간이 좋았다. 새벽에는 주방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 홀로 뚝딱뚝딱 작업을 하는 게 고즈넉하니 좋았다.


공유 주방은 넓은 주방 안에 작업대가 여러 대 놓여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작업대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어 개별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작업하는 모습이 보이고, 내가 작업하는 모습 또한 여과 없이 공유된다. 모두 자기 할 일 하느라 남의 일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작업을 하는 건 역시 조금 불편했다. 이를테면 내가 써야 하는 장비를 다른 사람이 쓰고 있으면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싱크대도 누군가 사용하고 있으면 작업이 다 끝나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마감을 제대로 안 하고 간 사용자가 있으면 한없이 불쾌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 홀로 작업하는 새벽의 주방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던 거 같다. 아주 작아도 좋으니까, 나만의 작은 베이커리를 갖고 싶다고.


아무튼. 서류의 산더미를 지나, 진입장벽이 높은 주방에 들어서, 디저트를 지지고 볶고 만들며 거래처를 확보해 나갔는데... 여기서 또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났다. 고객으로서 만난 카페 사장님들은 매우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지만, 디저트를 납품하고자 하는 '을'의 입장으로 만나본 사장들은 무언가 결여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전 05화극한의 ENTJ가 디저트 가게를 차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