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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 농린이 Jun 05. 2019

아무래도 나는 동양인인가 봅니다.

나이로비 일상 누리기 : 꽃꽂이 수업(Floral Arraning)

  나이로비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가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그도 그럴게, 나와 살기 이전에 함께 살던 하우스메이트분은 '취미를 개발하는 게 취미'인 분이셨다.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행동으로 옮기고, 도전하시는. 그런 분과 일 년 동안 생활하다, 지루함을 즐기는 게 취미인 나와 생활하니 세상이 얼마나 무료하겠는가.

  아무래도 내가 하우스메이트를 많이 좋아해서,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재미있는 걸 찾아내야 하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쩌지, 대체 어떤 게 재미있는 거지? 재미가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고 살아오는터라 더 어렵고 어려웠다. 나는 우리 고양이가 뭐하는지 가만히 쳐다보거나, 당신이 뭐하는지 가만히 쳐다보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말이지.

  아무튼, 우리 하우스메이트랑 함께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찾아낸 게 꽃꽂이 수업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취미생활로 많이 하던데, 케냐에도 꽃꽂이 수업이 있다.



BAHATI FLOWER LESSON

나무와 꽃으로 가득 차 있는 체 카페(CHEKAFE). 사진 페이스북 CHEKA

  꽃꽂이 수업은 나이로비 시내 라빙턴(Lavington)에 위치한 체카페(CHEKAFE)에서 진행된다. 클래스는 목, 금, 일요일에 진행되는데, 그 주의 상황이나 참석자에 따라 조금씩 변동되기도 하는 것 같다. 선생님께서 Whatsapp을 이용하시니, 미리 연락드려서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보고 참여 신청을 하면 된다.


  나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새로 개강되는 수업에 참여했다. 사실 꽃꽂이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였고, 꽃의 취향이나 뭐 그런 것도 없었다. 선생님이 꽃꽂이용 가위를 판매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그냥 동네 문방구에 가서 이천 원짜리 사무용 가위를 사서 갔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은 일본인이시다. 사실 체카페가 일본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이고, 수업을 진행하는 바하티(BAHATI)는 쌍둥이 자매 일본분들이 체카페에서 함께 운영하는 꽃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체카페는 항상 동양인들이 엄청 많다.

  첫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우연히(?) 전부 동양인이었다. 중국인 3명, 한국인 2명, 그리고 일본인 선생님 2명. 선생님과 우스갯소리로 '동아시아가 다 모였다'며, 아프리카 땅에 모여있는 서로에 대한 알 수 없는 동지애를 다졌다.

(좌) 첫 수업때 만든 꽃바구니 (우) 두 번째 수업때 다시 연습한 꽃 바구니

  수업은 생각보다 재밌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지만, 사실 꽃을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대한 수업이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다. 선생님이 꽃과 준비물을 다 준비해주시고, 꽃의 종류와 관리방법 등에 대해서도 다 설명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잘 듣고, 잘 따라 하고, 잘 배열하면 끝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의 평화가 있다. 작은 칼로 오아시스(꽃을 꼽는 초록색 스펀지)를 사각사각 잘라내고, 꽃줄기를 톡톡 끊어내고, 중심이 맞나-보면서 한 송이 한 송이를 조심히 꼽을 때 오는 그 마음의 평화가 있다. 내 꽃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의 꽃바구니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다음 시간에 만들 꽃꽂이. 다음 수업에 어떤 걸 만드는지 미리 보여주시고, 참여 신청을 그 자리에서 받기도 한다.

  케냐 살이가 그리 막 평화롭고 녹록하지만은 않다. 어딜 가든 감수해야 하는 교통체증(혹은 교통사고), 외국인을 돈으로 보는 현지인들의 미운 시선들, 쌓여가는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런 작은 것들이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항상 작은 긴장상태에 있다. 마음이 탁-풀려있지가 않은 것 같다.

  케냐에 여행만 오는 분이라도 이 정도 긴장은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거다. 교통문제는 언제 어느 순간에 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무중구(외국인)스트레스는 오히려 여행자들에게 더 심할 테니.

  케냐 여행을 길게 잡고 왔는데, 이미 그런 스트레스에 지쳐버렸다면, 꽃꽂이 클래스를 추천한다. 조용한 공간, 새소리, 예쁜 꽃들이 지친 마음의 위로가 된다. 수업시간에 만나는 외국인들과의 친목의 기회는 덤.


  꽃꽂이 수업을 다니며 가져오는 건 꽃바구니(혹은 마음의 평화)이지만, 수업을 다닐수록 느끼는 건 '아, 나는 뼛속까지 동양인이구나.'라는 확신이다. 확실히 편견이겠지만, 편견인걸 알지만, 이보다 잘 설명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케냐에도 다양한 문화생활이 많다. 여기저기 참여를 해봤지만, 문화생활이 지친다는 느낌뿐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어딜 가나 나를 어필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고 의견을 내야 하고,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아야 하고, 셀피를 찍어야 하고 인스타 영상에 등장해야 하고. 어딜 가나, 어느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나, 비슷한 패턴이었다.

  그런데 꽃꽂이 수업에서는 평화를 느낀다.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은 고요한 그 시간. 서로의 얼굴과 이름 정도밖에 모르지만 괜찮은 그 시간.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감사합니다-다음에 봬요'라고 하는 그 순간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무언의 예의. 이렇게 글로 적고 있자니, 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안 그러나? 할 수 있겠다 싶은 편견 덩어리의 글인데, 설명할 길이 없는 내 능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에너지를 분출해야 에너지가 쌓이는 사람들과 가만히 조용히 있어야 에너지가 쌓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케냐 사람들은 전자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극단적인 후자라 이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오랜만에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동양인이다.'라는 말 이외에, 이 느낌을 가장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얀색 꽃을 다 썼는데 빈자리가 남아 어쩔 수 없이 분홍꽃 몇 송이도 꼽혔다.

  하우스메이트는 하얀 꽃이 좋다길래, 내 꽃들 중 하얀 꽃들과 하우스메이트의 분홍색 꽃들을 다 바꿔줬다. 그랬더니 자기같이 하얗고 작은 꽃바구니를 만들어놨다.


      " 이번에 알았는데- 나는 하얀 꽃을 좋아하는 것 같아."

      " 그러게요. 오늘 만든 꽃바구니도 뭔가 당신처럼 생겼어요."



BAHATI (located in Lavington, CHEKAFE)

 - 위치 찾는 법 : 구글맵에 'CHEKAFE'검색 (Cheka izakaya와 혼동 X)

 - Flower lesson : 1회 당 3000실링 (한화 약 3만 원, 커피 음료 한잔 포함)

 - 수업 시간 : 목/금/일 (시간 및 날짜는 변동, Whatsapp으로 연락 후 확인해야 함)


Contact Information

 - +254 718 402 244 / +254 723 680 505 (Whatsapp/SMS)

 - Mail : Jambo@bahati.jp

 - www.bahati.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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