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Aug 27. 2021

아빠! 내일 선생님이 갑자기 바뀐데!

두 딸 덕분에 새롭게 보는 세상


"아빠, 내일 선생님이 갑자기 바뀐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선생님이 왜 바뀌니?"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를 시작한 지 한 주가 지났다. 퇴근길에 마주하면 그날 있었던 인상 깊었던 상황을 말해준다. 그저께는 담임선생님이 바뀐다는 말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학기가 이제 시작했고,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바뀐다는 상황이 이상했고, 아이를 통해서 듣는 것도 다소 당황스러웠다. 사전 연락도 없이 하루 전에 담임선생님이 바뀐다는 말에 선생님의 안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학교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들고 온 편지 한 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아쉬움은 충분히 달래 졌지만, 학교 측 행정처리에 대한 부족한 부분은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첫째는 또래보다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갔다. 더 어렸을 때부터 아이 성장발달 계산기를 누르면 매번 95%를 유지할 정도로 또래에 비해 덩치도 크고 발달이 빨랐다. 우연히 앞집 또래 친구와 생일과 발달 정도가 비슷하여 함께 조기 입학했다. 사는 곳을 자주 옮겨야 하는 부모를 만나서 전학을 다녀야 했는데, 1학년 2학기 때 전학을 했고, 2학년 2학기에는 선생님이 바뀌면서 큰 딸에게는 작지만 특별한 변화가 세 번째 찾아왔다. 조기입학, 전학과 이사, 담임선생님 교체란 변화만 들으면 '아이가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네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둔 부모라면 걱정부터 할 상황이다.



 첫째는 8살인데, 8번 이사했다. 5살까지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환경 변화를 체감하는 나이가 되면서 조금은 우려가 되어 정착을 고민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3년 정도 한 곳에 거주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더 있어보려고 노력 중인데,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 보니 아직 불투명하다. 고맙게도 큰 딸은 지금껏 잘 적응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급하게 교체된 상황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다만, 이전 선생님의 정년퇴임이라는 말에 예정된 상황을 조금 늦게 알려준 사실만 조금 아쉬웠는데, 그나마 큰 딸이 하는 말에 스르륵 녹아내렸다.


"아빠, 이틀 전에 전학 온 친구가 있는데, 걔는 오자마자 선생님이 바뀌었어"

"오호. 걔는 선생님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네"

"아빠, 웃긴 건 그 아이는 선생님이 두 명이라는 거지! 부럽지!"


 부럽다는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고, 다시 한번 아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 아이는 환경이 바뀐다는 우려가 아닌 자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소중한 스승과 인연이 더 많아진다는 기쁨과 행복을 발견했다. 그러다 문득 2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 위해서 가르치던 제자들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었던 동일한 상황이 그제야 떠올랐다. 당시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요소는 제자들의 동요가 없어야 한다며 교체 관련 사항을 비공개로 진행했었다. 서른 살 내외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지만, 민감한 교육을 받는 기간에 담임이 바뀌어서 교육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다. 정말 비슷한 상황을 겪은 나도 선생님이 교체된 상황에 대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며 오히려 내 감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어제는 퇴근하자마자 큰 딸이 달려와 재미있는 편지를 하나 보여줬다. 새로 오신 담임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 준 편지였는데, 만들기를 좋아하는 큰 딸의 취향을 적중했다. 귀여운 공룡이 상처에 바르는 밴드를 들고 있고, '놀욕때빼험따'(놀리고 욕하고 때리고 빼앗고 험담하고 따돌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마음이 아프면 선생님이 달래준다는 내용이었다. 둘째 딸은 언니 밴드를 자기가 가지겠다고 따라다니고, 첫째는 새로 오신 선생님에 대한 자랑을 계속 해댔다. 짧은 삼 일 동안 한분은 퇴임을 하시고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지만 우리 집 풍경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잘 지낸다.  





 고생하신 전임 선생님은 마흔 해를 넘게 교직에 몸을 담고 정년 퇴임을 하셨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제자들이 눈에 선할 텐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나도 한 가지 일을 스무 해 넘게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긴 세월을 교직에 몸 담았던 선생님의 깊은 뜻을 잠시나마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손수 써주신 편지를 통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가득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큰 딸의 대견함에 오늘 하루도 뿌듯하게 시작한다. 사랑한다. 세영아.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편지 좀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