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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16. 2021

두 딸의 편식을 극복하는 방법

드디어 정답을 찾았다



"점심에 뭐 시켜 먹을까?" (볶음밥일 것이다)

"볶음밥" (둘째는 짜장면일 것이다)

"짜장면"

 

아내가 휴일 점심식사에 대해서 물어보면 우리가 생각한 대로 대답을 한다.

 

"저녁도 시켜먹자! 뭐 먹을래?" (피자라고할 것이다)

"피자~~" (꿀 피자를 택하겠지)

"꿀 피자"

 

 코로나로 인해 외식을 나가기  부담스러워서 저녁때 한번 더 배달 음식을 먹자고 하면 두 딸에게서 나오는 답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메뉴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는데, 중국음식 외에도 돈가스, 치킨, 라면 정도로 칼로리가 높고 건강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선호할 만한 음식 중에 하나를 택한다. 배달음식은 그나마 괜찮은데, 집밥은 편식이 심하다. 가뜩이나 삼대가 함께 살기 때문에 각자의 입맛에 맞도록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이들의 편식은 늘 고민거리이다.

 




 어렸을 때 편식이 없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른이 생각하는 올바른 아이의 식습관으로 만들어졌거나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일 경우만 예외일 것이다. 우리집 두 딸은 절대 예외가 아니다. 특히 큰 딸은 달고 강한 맛을 품은 음식을 좋아하면서 새로운 음식은 거부한다. 큰 딸이 신문물에 대해 쇄국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학습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네 살 때까지 이것저것 마구 흡입했는데, 한번은 과일 음료를 맛있다고 건네주었더니 신맛에 진저리 치며 새로운 음식을 거부하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거나 맛을 보면 가족 전체가 박수를 치고 간단한 세레모니까지 한다. 일곱 살에 김치를 처음 먹고, 여덟 살 때 김밥을 처음 먹은 날도 기억난다.

 

 둘째는 첫째와 조금 다르다. 호기심이 많아서 아직까지 많은 것을 흡입하려는 준비된 자세로 생활한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건다.

 

"아빠, 뭐 먹어요?" (무엇이 필요할 때는 존댓말을 하는 좋은 습관이 있다)

"커피"

"콜라 같은데요" (3번 이상 반복해서 물어 봄)

"커피"

"콜라 같은데요, 봐봐요"


 

 한참 눈으로 관찰하고 커피라는 생각이 들면 날 무시하고 그냥 가버린다 기회주의적이며 상당히 경제적으로 생활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콜라를 먹고 있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한 다음 그 자리에서 앞서 언급한 "콜라 같은데요"를 열 번 정도 반복한다. 나도 쉽게 지지 않는다. 세번에 한번 정도 "커피"라고 대답 하는데, 결국 내가 무릎을 꿇는다. 존버 정신은 나보다 둘째가 우위에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부모의 자식 사랑이라는 예쁜 포장지가 있기 때문에 포기해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사실 승부는 누가 절실하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데, 난 절실하지도 않았고 단지 장난치고 재미만 볼 뿐이다. 하지만 둘째는 음식에 절실하다. 한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물고 놓치지 않는다. 이런 성향에서 편식이 문제가 된다. 첫째에 비해서 다양한 음식을 섭렵하고 있지만, 식탁에 앉으면 그날 간택된 음식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이다. 방금 전까지 잘 먹던 계란도 당장 기분이 달라지면 뱉어 버리기까지 한다. 기분은 들쑥날쑥이라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둘째도 첫째만큼 비호감 고객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식탁에서 고성이 오고 가거나 도망가는 딸들을 잡으러 다니는 상황이 연출된다.

 



 두 딸은 성격만큼이나 편식 성향도 많이 다르다. 자신이 선호하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첫째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둘째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특이점이 있다. 살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도 않고, 결국, 자라면서 입맛도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배가 고프면 다 먹게 되어있다. 몇 번의 배고픔을 통해서 거부하는 신문물을 수용하고 안 먹겠다는 음식의 노예가 되는 소신 없는 두 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만, 배고픔을 느끼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매번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편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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