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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l 14. 2021

아빠가 뉴스에 나와요!

I0234_ep.47 내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빠가 뉴스에 나와요!"


큰 딸이 소리친다. 뉴스에 나와 같은 이름의 유명인이 나올 때마다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다.


 가끔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본다. 오늘 검색해 보니 유명한 두 분과 조금 유명하지 않은 아홉명의 동명이인이 나온다. 당연히 나는 없다. 한 분은 코로나 상황 이후 방송 출연을 많이 하는 가정의학과 교수로 주로 뉴스에 많이 나오다 보니 항상 이름이 자막에 같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거나 "선배님이 티브이 나와요"라며 알려주고 본인들이 더 좋아한다. 나는 매번 '고마워' 한다.


 몇 해 전까지 내 이름을 검색하면 상스러운 욕과 함께 사기꾼을 잡자는 모집 글이 가장 먼저 올라왔는데, 가정의학과 교수님의 선전으로 그 사기꾼은 묻혔다. 그사이 잡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상에서는 교수님과 카피라이터 한 분을 포함한 열한 명의 전사가 한 팀이 되어 사기꾼을 몰아냈다. 난 아직까지도 후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은 단 한 번 있었다. 나와 같으면서 다른 유명한 사람이 인터넷 세상에 10명 정도 공존하는 것을 보면 여럿 존재하여 몇 번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희한하게 사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만 있었고 내게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십여 년 전 우연히 휴대전화 A/S 센터에서 기사분이섰는데, 신기해서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고, 본인도 처음이라며 상당히 좋아했다. 덕분에 수리비도 할인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같은 경우는 많이 있었다. 지금도 함께 일하는 친한 동료와 이름이 같다. 둘이 같이 있으면, 나이 드신 분일수록 웃으면서 한 마디씩 건넨다. "둘이 같이 있네" 기분 나쁠 이유가 전혀 없다. 둘이 십 년 정도 나이 차가 있다 보니 누군가 우리 이름을 부르면 머쓱해 하는 정도의 해프닝만 있었다. 사실, 이름이 같으면 조금 더 신경 쓰인다. 그 녀석이 이름이 좋아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참 괜찮다.


좋은 이름 체리




 하지만, 내 아내는 전국에 500명 정도 있다. 심지어 내 친구 이훈은 세 명이다. 한 명은 사무실에 같이 있고, 다른 두 명은 동창이다. 동일한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름의 뜻이 좋아 선택을 한 것이다. 대부분 이름은 작명소나 부모들의 고심을 통해서 탄생하는데, 우리 딸들도 마찬가지다. 둘 다 아내의 고심 끝에 탄생했다.


 첫째 딸에게는 중성적인이고 아내의 성과 내 성을 함께 포함한 선물을 하고 싶어서 태명을 '재림'으로 했다가 종교적인 느낌이 들어 '세영'으로 결정했다. 한 번은 큰 딸이 자신과 같은 이름이 학교와 학원을 통틀어 4명이나 있는데, 그중에 남자아이가 3명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당연히 우리 큰딸이다. 이러다 나중에 같은 이름의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면 되는데, 다행히 아직은 좋아한다.


 둘째 딸은 첫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우선 이름이 예뻐야 하고, 중성적이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면서 부르기도 쉬운 이름을 고심 끝에 '세이'로 결정했고, 이곳저곳 알아봐도 동명이인도 없었다. 참 예쁜 이름이었다.


유세이 vs 기쿠치 (네가 바꿔!!)


 그러다 둘째 딸의 이름이 조금 유명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인 야구선수 한 명이 메이저리그에 등장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시애틀 매리너스의 '기쿠치 유세이'란 선수다. 일본에서는 나름 유명했고, 둘째 딸이 태어난 에 미국에서 활동하기 위한 계약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참고로 며칠 전에는 류현진 선수와 맞대결을 하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보니 우리 딸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라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기쿠치는 1991년생이고 우리 유세이는 2018년생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아 '사기꾼'의 경우처럼 묻히기를 바랄 뿐이다. 막내가 중학교 정도 들어가는 시기면 은퇴할 테니 우리 딸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성적을 모니터링하면서 '저주'를 해야겠다. 난 악인이다.




 주변에 개명을 한 사람도 많고,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도 어렸을 때 내 친구처럼 멋진 훈, 준, 석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나와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자리에서 내 소중한 이름을 빛내 주고 있다. 뿌듯하면서도 자극이 된다. 동명이인 중에 내가 가장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보다 '나'들 덕분에 내 이름이 더 빛나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다만, 나도 열두 번째 선수 명단에 올려서 나머지 열한 명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조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밝게 빛나다가 아닌 밝게 비추는 사람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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