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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30. 2021

요즘 초등학교 쉬는 시간 풍경




"아빠! 나 쉬는 시간 DJ 하기로 했어!"

"그건 또 뭔 소리니? 이젠 쉬는 시간에도 DJ를 해?"


 첫째의 오늘 자랑거리는 학급에서 새롭게 맞게 될 자신의 역할이다. 학급이 시작했으니 반장이나 부반장, 아니면 체육부장이나 미화부장이 아닌 쉬는 시간 DJ를 한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세상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른들이 모두 모르는 아이들 세상이 따로 있는 건지 헷갈렸다. 저학년이라 반장은 뽑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선발은 하는데, 자신의 영역과는 조금 먼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서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쉬는 시간 DJ에 대해서 더 대화를 나눴다.


"DJ를 하려면 노래를 많이 알아야 하는데, 아는 노래가 많으니까 친구들이 좋아하겠네!"

"사랑을 했다도 있고, 아이유 노래 가을 아침도 있고, 근데, 그냥 댄서를 할까?"

"댄서는 또 왜 하게?"

"나 똥 밟았어 춤 잘 춰!"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진다. 노랫소리를 듣고 갑자기 등장한 둘째는 자기가 하겠다고 훼방하면서 춤판은 커졌다. 둘 다 흥이 넘친다. 똥도 밟고 괴상망측 춤도 추고 소리까지 질러대는 두 딸은 보고 있으면, 티브이에 나오는 예쁜 아이돌이 생각나지 않는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영상이 하나 떠오른다. 시골마을 구판장 같은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라디오를 틀어 놓고 신명 나는 노랫가락에 맞춰서 요상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겹쳐진다. 소싯적 현대무용을 배운 듯한 큰 할머니는 두 팔을 휘이 저어가며 이름 모를 예술 춤을 추고, 작은 할머니는 팝핀과 브레이크를 섭렵했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가슴 튕기기와 개다리 춤을 춘다. 정말 똑같다. 춤판이 수그러드는 것 같아서 소리 지르는 둘째는 쫓아내고, 헉헉대는 큰딸에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리액션을 한번 해주며 되물었다.


"DJ나 댄스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

"음~~ 급식을 알려주는 거 괜찮을 것 같아. 아이들이 많이 물어보거든"


 친구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것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역할을 찾았고 급식 알리미라고 이름까지 정했다. 소소하지만 친구들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만족을 느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반 친구끼리 학급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해서 서로에게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의미 있는 놀이 같다. 쉬는 시간 DJ, 댄서와 급식 알리미 외에도 다양한 역할이 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정리하는 레인보우도 있고, 친구들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명탐정도 있다. 큰 딸은 명탐정의 경우 너무 쉬운 일을 한다고 넋두리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어차피 분실물 보관함에 다 있기 때문에 가서 찾아오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란다. 정직한 어린이 세상에서 오는 현명한 답이다. 우리 어릴 적에도 있었던 만물박사도 있다. 천천히 생각해 보니 쉬는 시간 DJ와 댄서는 예전 학예부장과 비슷하고 레인보우는 미화부장이나 청소 부장과 역할이 비슷하다. 조금 더 세밀해졌고, 아이들의 감성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한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필요나 소요에 의해서 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비슷하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는 요즘 어린이 세상이 더 재미있어 보인다.





 사실 코로나 상황 전에는 주말에 키자니아나 잡월드를 많이 다녔다. 첫째 딸이 워낙에 좋아해서 월 2~3회 다녔다. 각종 직업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놀이동산처럼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학습의 연장선이란 생각이 들어 매니저 역할까지 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생각이 난다. 코로나로 인해서 활동 범위가 줄어들자 나름의 놀이를 학급에서 만든 아이들이 대견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만든 재미있는 직업이 어른 세상에서도 비슷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자라면서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도 점심때 메뉴를 알려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 정말 사소한 것인데, 그런 것을 찾아서 다른 사람에게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조직에는 꼭 있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궁금증을 해소해서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낀다면 서로의 욕구와 소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작은 행복이 생성된다. 급식 알리미와 똑같다. 시골 구판장에서 춤을 추는 할머니나 쉬는 시간 노래를 부르는 초등학생이나 점심을 같이 먹는 동료들이나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사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살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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