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에서 위험한 외출

5화 작전지속지원(보급작전)

by 혜남세아
작전지속지원 [作戰持續支援, Operational Sustainment]
(출처: 네이버 군사용어사전)

행정 및 군수분야 활동으로서 전투, 전투지원, 전투근무지원 부대에 대하여 임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자원, 즉 인원, 장비, 물자, 시설 및 자금을 통제 관리 및 제반근무를 제공하는 것




전쟁 중에도 휴가를 가거나 외출을 나간다. 전쟁영화를 보면 휴가나 외출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레퍼토리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적들은 몰려오고 전우는 옆에서 죽어가며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전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휴가와 외출은 어색하지만 현실이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좋아하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영웅들을 소재로 삶과 전쟁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다양한 전투 에피소드도 흥미롭지만 중간에 나오는 여유와 휴식을 통해서 비치는 소소한 일상도 인상 깊다. 아이러니하게 가장 감명 깊은 접한 장면은 영화 말미에 윈터스와 닉슨이 평화로운 강가에서 수영하는 장면이다.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레바논 남부 지역은 이스라엘과 접경해 있어 레바논 전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마을 곳곳에 포탄과 총탄 흔적이 남아있고, 외진 곳에는 부서진 군용 차량도 가끔 보였다. 분쟁이 계속되다 보니 재건보다는 아픔의 흔적을 뒤로한 채 인근 지역에 건물만 몇 채 새롭게 짓는 경우가 많았다. 티르시는 도심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작은 상점이 많았고 대형마트도 있었기 때문에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필수 생필품은 UN에서 대부분 지원받기 때문에 감미품이나 다과류 또는 지역 특산물 정도만 구입했다. 하지만, 상점이 형성된 곳일수록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에 급조폭발물이나 자살폭탄 같은 테러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활동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2~3주에 한 번 정도 경호를 갖춘 상태에서 단체로 대형마트를 다녀왔다. 외부 출장 업무도 있었는데, 확실하게 안전이 확보된 다른 나라 군용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두세 번밖에 못 간 것을 보면, 군대에서 PX를 찾는 것처럼 소중하면서 간절했던 시간이었다.


처음 마트를 방문한 날이 생생하다. 십여 명이 모여서 버스를 타고 경호를 받으며, 티르로 향했다. 우리가 살던 곳에 비해서 조금 더 발달했기 때문에 그나마 간판이 있는 상점이 길가에 보였다. 이동 중에는 고대 유적지도 눈에 들어왔다. 지중해 쪽으로 다다르자 우리나라 대형마트의 반의 반 정도 크기의 건물이 보였고, 건물 중앙에는 S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버스를 주차하고 빠른 걸음으로 마트에 들어섰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장면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 마트와 똑같았는지 신기했다. 다만, 글자만 조금 다를 뿐 상품 코너 배열이나 제품 진열도 유사했다. 어려운 아랍어만 보였지만 생각보다 쉽게 물품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어딜 가도 사람 사는 곳이니 동일한 게 당연한데, 해외를 처음 나왔고 주변 환경이 어렵다 보니 선입견이 가득했었던 것 같다. 특이했던 점은 한쪽에 시가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생필품이 모여 있는 공간도 별도로 존재했다. 요즘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 가면 천냥하우스처럼 작은 생필품을 별도 공간에 모아두는 것과 비슷했다. 꼭 필요한 생필품과 식료품은 UN에서 제공받기 때문에 다과류나 부수적인 것만 구매했다. 난 커피와 시가, 그리고 내 운명에게 전해 줄 소중한 선물을 구입했다. 쇼핑 중 점원에게 레바논에서 만든 제품을 찾는다고 물었는데, 답변이 인상 깊었는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물품은 중국산이라며 비아냥 거렸는데, 진짜로 생필품 뒷 면을 보니 모든 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었다. 그 후로 난 메이드 인 차이나 트라우마가 생겨서 항상 제품 뒷면의 생산국을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티르의 대형마트 말고 다른 지역에 있는 군용 마트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다른 나라 행사에 참여하게 되면 그 나라 마트를 이용할 수 있는데, 물건은 적었지만 외부 마트보다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높고 쇼핑할 때 안전도 확보됐으며, 결정적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적었다. 다녀온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졌는데, 이태리 마트는 와인이 저렴하고, 터키 마트는 시계가 싸며, 스페인 마트는 선글라스가 면세보다 저렴하다고 들었다. 난 이태리 마트만 다녀왔는데, 스페인 마트에서 싸게 판다는 선글라스와 터키 마트에서 저렴하다는 시계를 이태리 마트에서 여러 개 구입했다. 선글라스는 명품으로 디자인과 케이스가 마음에 들었는데, 레바논으로 출국하기 전부터 기획했던 '완벽한 계획' 중 중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라 매우 뿌듯했다. 지금도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의 콩닥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쇼핑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한번 나가면 치밀하게 계획했다. '완벽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 위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물품을 공수받아야 했다. 한 번은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동료에게 부탁해서 물품을 받았던 적도 있고, 원하는 물품을 찾지 못해서 헛걸음한 적도 있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터치만 한번 해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지 비교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통해서 더 큰 감동과 사랑이 쌓일 수 있었고 덕분에 나와 내 운명의 심장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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