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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ug 31. 2021

조회수 30만보다 더 큰 희열

글을 쓰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


"옳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다. 글이라고 하기에 너무 짧고, 문장이라고 하기에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전해준 2음절 단어이다. 2음절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인데, 살아오면서 수많은  중에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2음절짜리 형용사는 '옳다'였다.


 난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운다. 안면인식 장애도 있고, 게다가 어려서부터 글을 많이 읽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는 작가도 거의 없다. 동창 사촌 고 박완서 님이나 황석영, 김훈 등 유명한 작가 외에 요즘 티브이에 많이 나오는 김영하, 유현준 작가 정도만 알고 있다. 외국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를 알고 있지만 그들의 명작을 읽어본 적도 없다. 다만, 지난주에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를 처음 읽으면서 하루키를 영접했다. 아버지와 동갑인데, 어려운 사람인 것 같다. 앞으로 글로는 자주 볼 것 같은데, 직접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최근 활동하는 국내 작가 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두 명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손원평과 이기주 작가이다. 손원평 작가는 8월 한 달 독서 모임에서 읽은 소설 아몬드의 저자이다. 당연히,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책을 한 달 동안 꾸준하게 읽다 보니 한 달간 대화를 나눈 것만큼 친해졌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이야기이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에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작성한 기록을 확인해 보니 36장이나 됐다. 독서 전에 기대평을 작성한 독전감과 4부로 구성되어 50~100페이지의 단락마다 소감을 작성한 글, 마지막에 작성한 독서 리뷰까지 합치면 50장은 되는 것 같다. 책 한 권 읽고 50페이지짜리 소감을 남겼다. 과하지만 내가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의식적으로 '사랑과 정성'을 담아봤다. 결과는 글쓰기 플랫폼에 조회수 100회 정도로 보상받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다른 한 명은 나에게 옳다를 건네 준 작가이다.





 2주간 힘들었던 훈련에 대한 보상으로 하루 쉬는 날이 주어진 여유로운 평일 아침이었다. 여유를 만끽하며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게재하다가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아침에 잡념이 많아 이것저것 쏟아내다가 도저히 발행하면 안 될 것 같아 주말에 작성한 글로 대체 발행하고 다른 작가들이 작성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에세이를 검색했는데, 구독자수가 많은 순으로 작가 리스트가 나열되었다. 당연히 아는 작가가 없었다.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수만 명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작가를 모르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내 향과 전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 있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작가분들도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그러다 스크롤바를 잠깐 멈췄다.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된 명작이 즐비한데, 브런치에도 글을 게재하는지 궁금해서 계정으로 들어가니 마침 어제 작성한 글이 하나 있었다. '참된 위로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최근 발행한 도서에 있는 글을 옮겨다 적고 좋은 문구를 추가해서 남겨줬다. 소중한 글이기에 내 마음을 남기고 싶어 댓글을 달았다. 최근 좋은 글에 댓글을 다는 습관이 들었다. 어차피 내 댓글이 읽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글을 발행한 작가를 통해서 받은 좋은 감정을 전해주는 게 '옳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큰 동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알기에 나만의 소중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혹시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답글에도 내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기대심에 남기는 이유도 조금은 있었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글 읽던 것을 마무리하고 아내와 5km 달리기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에 브런치 알림이 하나 울렸다.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를 봤을 때 보다 더 큰 울림이었다. 아니다. 조회수 30만 회 보다 더 큰 울림이다. 지금껏 이런 희열을 느낀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감정이 폭발했다. 달리기를 하는 내내 큰 딸이 키자니아에 입장할 때 보다 둘째 딸이 뽀로로 파크에 들어갈 때보다 더 빠르고 활기차게 달렸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동네 미친 아저씨 같을까 봐 조용하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계속 뛰었다. 한참 뛰다 보니 땀과 눈물이 범벅이었다. 기분만으로 따지면 임관 당시보다도 기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성덕이라는 표현을 해줬는데, 덕후가 아닌 나한테 하는 말이라 유쾌하진 않았지만,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보고 계속 기분 좋게 지내는 것을 보면 상황을 만끽한 것은 틀림없었다.





 사실 난 인정의 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정을 받으면 더 노력하게 되고 그 인정 덕분에 고생을 한 적이 많아서 누군가 인정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댓글 사건은 진심이 통했다는 것에 스스로 큰 위안을 받았다. 직접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정성을 다해 댓글을 쓴 행동에 대해서 게 '옳다'를 전해 준 작가로부터 옳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아침 글쓰기에 대한 푸념을 원 없이 쏟아붓고 좋아하는 작가 글에 진심을 담아 댓글 하나 남겼을 뿐인데, 가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2음절 '구독'으로 보답을 했다. 나에게 '옳다'와 '구독'을 전해 준 작가를 평생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걱정이 하나 생겼다. 작가가 아직까지 계정구독하는데, 혹시 이 글 알림이 전달되면 실수로 누른 구독 버튼을 알아차릴까 봐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어찌 되었건 간에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최대 기쁨을 선사해 준 작가님께 진심을 담아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얼마 전 발행한  '마음의 주인'아직 안 읽었는데, 갑자기 미안한 기분이 든다. 당장, 책방으로 나서야겠다.




덧) 진심으로 내 글 알림이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족한 글 수준도 부끄럽지만 팝업 창 삭제를 위한 몇 번의 손가락 놀림은 구독 취소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잠시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고민했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과 소중한 감정을 놓치기 싫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큰 고심 끝에 오늘 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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